설교와 대중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idol)은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젊은 연예인, 주로 가수를 이른다. 하지만 원래 이 말은 우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고, 그런 이유로 대중의 맹목적 지지나 인기를 누리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중세 유럽 사회에도 일종의 아이돌이 있었는데 바로 설교자들이었다. 유명한 설교자들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고 그들의 설교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중세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 설교는 일반 평신도들에게 교리를 전달하고 가르치는 핵심 수단이었다. 하지만 중세 초기엔 지식인의 언어인 라틴어로 설교했기에 일반인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12~13세기 들어 속어로 설교가 이뤄지면서 설교의 대중적 호소력은 높아졌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북동 유럽에 복음을 전파하고 십자군에 동참을 호소하고 유럽 내부의 이단을 척결하기 위해 대중 설교를 독려했다. 중세 말 도시를 순회하면서 대중 설교를 주도했던 사람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도미니쿠스 수도회 소속의 탁발 수도사들이었다.

중세 말 이탈리아 도시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던 대표적 설교자는 도미니쿠스 수도사 조반니 도미니치(1356~1419)와 프란체스코 수도사 베르나르디노 다 시에나(1380~1444)였다. 당시의 여러 증언들에 따르면 피렌체 시민들은 도미니치의 설교에 열광했다. 그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은 공증인 라포 마체이는 상인 프란체스코 다티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만큼 훌륭한 설교를 결코 들어본 적이 없고, 그의 설교가 보여준 명백한 진실에 감동해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했다. 베르나르디노의 설교 기술도 현란했다. 그는 “여러분은 개구리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를 아십니까? 개구리는 개골개골이라고 말하지요. 거기 주무시는 여자분! 당신도 악마 루시퍼가 떨어졌던 똑같은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등 생동감 있는 문장과 구체적이고 익숙한 이미지를 활용해 대중을 즐겁게 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중세 설교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 유대인과 이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 동성애자 비난, 악마의 유혹과 저주, 죽음과 지옥에 대한 공포, 수많은 기적 등 차별적이고, 불관용적이며, 환상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설교자들은 “혐오스러운 단어들”이 나오면 침을 뱉으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이런 자극적 설교에 환호했다. 그렇지만 교황청 서기이자 박식한 인문주의자였던 포조 브라촐리니(1380~1459)는 당시의 설교자들을 다음처럼 신랄하게 비판했다. “설교자들의 이야기가 너무 황당해서 매우 엄격하고 격식을 따지는 사람조차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허둥지둥 몸을 흔들고 미친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였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손으로 탁자를 강하게 내리치고 종종 웃기도 한다. 다양한 모습과 예언 능력이 있는 해신 프로테우스처럼 보이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사람들을 꾸짖는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로 설교자라기보다는 원숭이처럼 보인다.” 시대를 앞서간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포조에게 대중 설교는 웃기는 촌극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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