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로 보는 2020년 대한민국

이융희 문화연구자

연말이서인지 한 해를 점검하는 책이나 리포트 또는 칼럼이 쏟아져나온다. 이러한 보고는 대부분 코로나19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를테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효과, 코로나19로 인한 정치권의 움직임, 코로나19를 통한 교육의 변화 등등.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마스크로 옮겨간다면 어떠할까? 향후 10년, 20년 후 미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코로나19가 아니라 오히려 마스크가 아닐까?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처음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미세먼지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던 KF94 방역마스크 대란을 떠올려보자. 해외에서 이 마스크를 가져가겠다며 사재기를 하고 가격이 솟구치지 않았나. 한국 공장 중 일부는 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마스크를 통해 수익을 거두겠다며 사재기를 묵인했고,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는 배째라는 식의 대응이 난무했다. 정부는 방역 마스크 5부제를 시작했고, 마스크를 통한 한국 사회의 재편이 시작됐다. 이제 마스크 없는 사람은 건물 출입이 불가능한, 건축물 바깥을 맴도는 노숙인이 됐다. 마스크는 그 자체로 자본의 상징이 됐다.

해외 상황은 어떠한가. 마스크를 쓰지 않기 위해 시위하는 사람들, 마스크를 강요하는 게 국가폭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그들을 공중보건 개념이 미비한 미개인들이라 생각하지 않았던가. 마스크를 안 쓰면 강제적으로 처벌하는 제도가 구축되기 시작했고 마스크는 그 자체로 사회질서의 상징이 됐다.

그렇다고 마스크가 늘 현대사회의 계급이나 부정적인 지표를 살펴보는 리트머스지였던 것은 아니다. 마스크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사람을 연결시키는 매개이기도 하다. 마스크 없는 얼굴은 실내에서, 그리고 온라인에서만 존재한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사람들끼리의 유대를 필사적으로나마 붙잡고 연결시키는 것이 마스크다.

그러나 마스크 소비는 새로운 환경문제를 야기했다. 홍콩의 한 비정부기구는 전 세계 바다에 일회용 마스크 15억6000만장이 부적절하게 폐기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회용 마스크는 분해되는 데 최대 450년이 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은 해양 생태계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 아래서 우리가 만나고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마스크를 소비해야 한다. 이러한 마스크 폐기의 문제는 현대를 관통하는 또 다른 환경오염문제로서 끊임없이 회자될 것이다.

슬슬 백신이 가동되는 만큼 코로나19 상황은 언젠가 종료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전염병이 발생하고 또다시 미세먼지가 창궐할 때 우리는 이제 익숙해진 마스크를 꺼내고 마스크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것이다. 2020년은 마스크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는 걸 목격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마스크는 코로나19가 남긴 상흔이자 발자국이다. 삶에 필수적인 새 물건이 등장하면 그 물건을 둘러싼 질서가 새롭게 생성된다. 마스크를 추적하는 것으로 우리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놓쳤던 몇 가지 지점들을 되새기게 된다. 2020년을 되새긴다면 이러한 도구들의 미시사 역시도 함께 살펴보는 것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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