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책고집’ 대표

‘노인이 되면 나라야마 산으로 떠나야 한다.’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이마무라 쇼헤이 연출)의 열쇳말이다. 나라야마 정상에서 삶을 마감한 노인에게는 천국이 기다린다는 전설이 있다. 아들은 노쇠한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간다. 아이들은 노래한다. “할머니는 운이 좋아. 눈이 오는 날에 나라야마에 갔다네.” 남은 가족은 어머니의 옷을 나눠 입고 겨울을 난다.

최준영 ‘책고집’ 대표

최준영 ‘책고집’ 대표

봄이다. 꽃구경 나가기 좋은 계절이다. 꽃구경은 단지 꽃만 구경하는 일이 아니다. 봄의 생기와 활력을 몸으로 호흡하는 일이며, 대지의 향기와 따사로운 기운을 마음에 머금는 일이다.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 앞에서 겸허하게, 분명하게 우리의 살아있음을 축하하고 축하받는 일이다. 그러나 올해는 선뜻 꽃구경 행장 차릴 마음이 일지 않는다. 코로나19 탓이다.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니다. 날씨는 봄인데 마음은 겨울이다.

친구 어머니의 부고가 날아온 건 지난해 가을이었다. 조문은 받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는 부고였다. 오지 말라는 부고, 그새 익숙해진 풍습이다. 누군가 슬픈 일을 당하면 망설일 것 없이 찾아가 슬픔을 덜어주는 것이 도리라 배웠지만 배운 대로 행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참하고 서글픈 나날이다. 부고에 계좌번호를 넣었어도 그러려니 했겠건만 친구는 그러지도 않았다. 이후에 만난 친구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600명을 넘어섰다. 대부분 기저질환을 앓던 어르신들이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들이다. 단지 숫자로 뭉뚱그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부모가 돌아가신 일이고, 수많은 부고가 공중을 휘돌았을 일이다. 아무 데서나 K방역의 성공을 운위해선 안 되는 이유다. 친구는 어머니의 사인을 말하지 않았지만, 기나긴 침묵과 ‘오지 말라는 부고’를 통해 1600명의 사망자 중에 자신의 어머니가 포함됐음을 암시했다.

친구가 눈물을 흘린 건 그로부터 반년 가까이 지난 뒤였다. 비통한 자의 오열엔 도리없이 후회와 탄식이 묻어났다. 어머니를 모셨던 요양원이 코호트 격리에 들어가는 바람에 자신은 물론 그 어떤 가족도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가족들은 그저 발만 동동 굴렀고, 피로에 지친 의료진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뒤늦게 요양원에 모신 걸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요양원은 아픈 어머니를 위한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순전히 자식들의 편의와 편리를 위한 격리와 회피의 공간이라는 것을,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야 친구는 비로소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나요(후략).”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노래가 하필이면 장사익이 부르는 ‘꽃구경’이었다. 노랫말 후미의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라는 대목에서 심장이 멎는 듯한 흉통에 몸서리쳤다. 이따금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도리없이 그 노랫말이 뒤미처 떠오른다. 코로나로 어머니를 여윈 친구의 괴로움은 4년 전 내가 겪었던 흉통과 후회를 닮아 있다. 설마 그런 관습이 실재했을까만 코로나 현실에서 나이 드신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는 일은 영락없이 어머니 등에 업고 꽃구경 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봄이면 꽃구경을 간다. 꽃구경은 꽃만 구경하는 일이 아니다. 꽃으로 나비로 환생한 어머니, 아버지를 뵈러 가는 일이다. 다가가서 말씀드려야 한다. 죄송했다고,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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