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처벌만으론 학교폭력 못 끊는다

박진웅 | 편의점 및 IT 노동자

학생들의 세계에서 학교폭력의 피해자란 일종의 실패이자, 견뎌야 할 굴레처럼 여겨진다.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면 안 될 것 같고,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당할 만하니까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도 느낀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고,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의 대상이 아니길 바라는 희망은 피해 학생이 더욱 오랫동안 고통을 받게 만든다. 특히 학생들의 폭력은 외부 사회와 단절된 채 일어나 폭력의 정도가 심해져도 아무도 말리지 못하고, 피해 학생은 점점 가혹한 상황을 겪게 된다.

박진웅 편의점 및 IT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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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때의 일이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매를 드는 것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분이었다. 당시 한 친구가 약간의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선생님은 가해 학생을 불러내 한 시간 내내 체벌을 했다. 보는 이가 무서울 만큼의 폭력으로 다스린 그 교실에서, 학교폭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중3 때의 선생님은 학교폭력을 아이들의 실수라고 여기는 편이었다. 혼을 내고 타일렀으며 때때로 체벌도 했으나 어떻게든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하곤 했다. 그러나 당시 가해 학생들은 선생님의 기대보다 영악했고, 그들은 장난이라는 거짓 뒤에 숨어 아이들을 때리고 괴롭혔다. 학기 초에는 장난인지 폭력인지 애매했던 것들이, 학년이 끝날 때쯤에는 명백하게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나 역시 교실 뒤편에서 몇 번 두들겨 맞은 기억이 난다.

어른들이 학교폭력을 그저 한때의 치기 어린 실수로 외면할 때, 폭력은 그것을 영양분 삼아 더욱 끔찍한 모습으로 피해 학생들을 괴롭히게 된다. 고2 담임선생님이 교육적으로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분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학생의 말을 과하다시피 예민하게 받아들였고, 그 어떤 안일한 기대도 없이 가해 학생을 대했다. 가해 학생 역시 더 강한 폭력의 피해자로 느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피해 학생은 그 선생님 덕분에 자유롭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오늘날의 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엄벌주의적 폭력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체벌이 없음을 고려하더라도, 현재 교육 현장에서 학교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 학교폭력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학교와 교사 모두 징계나 페널티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정작 학교폭력을 막거나 줄이고, 학생들의 회복을 우선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학교폭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 현장에 한계가 있다면, 학교폭력으로부터 학생을 구할 수 있는 또 다른 주체는 바로 가족이다. 그러나 대부분 학교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은 사실을 접하고도 쉽게 부정하고는 한다. 우리 아이가 그렇게 나쁜 짓을 할 리 없다거나, 그렇게 심한 일을 당하진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학생들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곤 한다. 결국 어른들의 자기 보호와 안일함이 학생들을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셈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가해 학생에 대한 엄벌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폭력이라는 것이 인간사회에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폭력을 멈추게 하고 재생산을 막으며, 피해자가 자신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은 이런 관점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 그리고 그가 감당해야 할 적절한 처벌을 통해 회복을 위한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학교폭력을 없앨 수 없다. 그리고 학생들을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폭력의 불씨를 빠르게 끄고, 큰 화상을 입기 전에 피해 학생을 구해내는 것이다. 그래야만 가해 학생도, 피해 학생도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학생들을 통제하고 처벌하려고만 하는 어른들의 편의주의적 태도가 바뀌어야만 학교폭력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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