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차별은 현재진행형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한 달 사이 트랜스젠더 3명이 세상을 떠났다. 당당하게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워왔던 사람들이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건 우리 사회가 혐오와 차별의 현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차일피일 미뤄온 결과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어처구니없는 논거 중 하나가 ‘한국에는 성소수자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뻔뻔하게도 구체적인 근거까지 내놓는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성소수자 차별에 관한 진정 건수가 거의 없고, 외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폭력이나 차별 사례도 별로 없지 않냐는 것이다. 잘 안 보이는 것과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안타깝게도 성소수자는 공식적으로 가시화되거나 정책 수립을 위한 인구집단으로 인정된 바가 없다. 인구주택총조사 등에서 성적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한 통계를 체계적으로 수집한 적도 없고 교육, 노동, 보건의료, 가족 등의 정책 수립을 위한 실태조사에 성소수자 관련 조사를 포함시킨 적도 없다. 수사당국에서 소수자 대상 범죄 통계를 따로 집계하지도 않는다. 차별의 현실을 밝혀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니 차별이 입증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이 없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태를 조사한 결과가 있다. 2014년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성애자·양성애자 응답자 중 ‘직장 동료들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4.8%에 그쳤고, 41.7%가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20년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서는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20.5%가 ‘집을 떠나기 전에 모욕적인 말이나 행동에 대비하려고 노력한다’고 답했고, 응답자 중 85.2%가 ‘지난 1년 동안 차별 경험이 있다’고 했다. 2년 동안 우울증으로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무려 57.1%, 공황장애의 경우는 24.4%로 나타났다. 진정 건수가 적은 이유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직장에서 경험한 부당한 대우나 어려움이 있었지만, ‘참거나 묵인하였다’고 답한 응답자가 93.9%였고, 그 이유로 신고나 대응을 하면 ‘내가 트랜스젠더인 것이 밝혀지기 때문에’라고 답한 경우가 무려 72.1%나 됐다. 이래도 차별이 없다고 우긴다면, 지극히 게으른 것 아니면 지독하게 악의적인 것, 둘 중 하나다.

혐오·차별에 맞선 잇단 죽음
우리 사회가 현실을 외면하고
정치인들도 “반대할 권리”운운
실효성 있는 조치를 막아온 탓

문제는 이런 허무맹랑하고 억지스러운 주장 때문에 입법이나 정책 추진에 번번이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 2013년 차별금지법안 두 건이 철회된 것을 시작으로 성소수자와 관련된 입법이나 정책이 여러 차례 좌초되었다. 정부 차원의 정책 추진도 전무했다. 2012년 이후 지방의회에서 철회된 인권조례는 무려 70건이 넘는다. ‘반대가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의견으로서의 자격조차 없는 조악한 주장들을 두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입법이나 정책을 주저한다는 것이 도무지 말이 되는 일인가?

2021년 현재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월 발표한 학생인권종합계획은 성소수자 학생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임기가 1년 정도 남은 지금 문재인 정부가 성소수자 관련하여 추진한 정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지자체장 선거를 보면 더욱 암울하다. 안철수 후보는 퀴어축제를 두고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고, 이언주 후보는 ‘동성애 성문화를 강요할 권리까지 인정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오세훈·나경원·조은희 후보도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운운했고, 2016년 ‘3당 대표 초청 국회 기도회’에서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 관련법 다 반대한다’고 약속했던 박영선 후보는 ‘5년이 지나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지만 더 이상 구체적인 답변은 회피했다.

흥미로운 것은 주저하고 침묵하는 정치인들도 약속이나 한 듯 “성소수자 인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단다는 것이다. 굳이 긍정적으로 본다면 원칙적 입장이라도 밝힌 것이지만, 그 말이 구체적인 정책이나 입법으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건 공문구에 불과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정부나 국회가 성소수자와 관련하여 한 일은 전무했다. 일반적인 차별금지정책도 사실상 추진된 것이 없었다. 여기서 공문구가 더 반복된다면, 국민을 노골적으로 속이는 거나 다름없다. 혐오와 차별의 현실은 어제도 오늘도 현재 진행형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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