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신형철 문학평론가

이제 7년 정도 되니 당신조차 이렇게 말하네요. 세월호, 이제는 지겹다고요. 애덤 스미스가 오래전에 쓴 <도덕감정론>(1759)이 생각납니다.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동감 현상(국역본들이 ‘sympathy’를 ‘동감’으로 옮기네요)은 타인의 비애보다는 환희를 향하는 경향이 있다고, 동감의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의 강도도 비애보다는 환희 쪽이 크다고 적혀 있습니다. 요컨대 타인의 슬픔은 함께 느끼기 쉽지 않고, 느껴도 내 감정의 양이 작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닐 겁니다. 평범하다고 해도 좋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겹다는 말이, 눈에 띄지 않게 어디 가서 조용히 죽어버리라는 말로 들릴 유가족이 있습니다. 우리의 평범함 때문에 죽어도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신형철 문학평론가

당신은 이 사건만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불편해합니다. 다른 사건의 희생자들을 언급하며 대신 억울해하기도 합니다. 비극들의 비극성을 계량하는 일은 사려 깊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 특별함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동감을 위해선 내가 같이 경험한 게 아닌 상대방의 상황을 상상하고 그 자리에 자신을 대입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도덕감정론>은 말합니다. 왜 굳이 ‘상상’이라고 했겠습니까. 우리는 대개 사건 발생 이후에 그것에 대해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는 상상력이 필요 없습니다. 모두가 함께 목격했으니까요. 살려달라는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상황을요. 차라리 못 봤더라면 어땠을까요. 상상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게요. 유가족들만이라도 말입니다.

지겹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그들은 버티고 있습니다. 당신은 압니까? 동감을 얻지 못했을 때의 충격은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 쪽이 크다고 합니다. <도덕감정론>은 두 배 이상의 차이라고까지 말하지만 그야 누가 알겠습니까. 이것이 사실임을 실감하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큰 고통을 느껴봐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를 칭찬할 때는 옆 사람이 맞장구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욕할 때는 같이 욕해주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네가 내 친구와 친구가 되지 않는 것은 괜찮아. 그러나 내 적과는 반드시 적이 되어야 해.’ 하물며 가족을 잃은 슬픔이 동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애덤 스미스는 적었습니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모욕은 그들의 재난을 경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제 지겹다” 말하는 당신이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해선 안 됩니다
더 이상 밝혀낼 의혹이 없을 때까지
그들의 비애에 ‘동감’해야 합니다

한때는 동감해주던 유가족에게 당신이 지금은 왜 화를 내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슬퍼 보이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다시 <도덕감정론>입니다. 내가 동감에 실패하면 상대방만이 아니라 나도 불쾌해진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럴 때 상대방을 비난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더는 동감하지 못할 정도로 슬퍼하고 있으니 “비겁하고 나약한 자”가 아니냐고 말입니다. 큰 고통을 느낄 것으로 짐작되는데 뜻밖에도 의연한 사람에게 우리가 경탄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가 실제로 느끼는 고통과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의 격차를, 그가 제 것을 낮춤으로써 맞춰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무덤덤함에 미안해질 필요가 없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유가족들이 그래주길 바랍니까?

이제 당신은 이렇게도 말하네요.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유가족이 아니라 세월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라고 말입니다. 당신은 대통령과 여당을 욕합니다. ‘이용’이라고 했습니까? 실은 그들이 세월호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이 그들을 이용한 것입니다. 지난 정부는 이용 가치가 없었습니다. 진상 조사를 방해하는 끔찍한 짓이나 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대안 집단을 이용해보려 했습니다. 청와대에도 보내고 국회에서도 다수당이 되게 해서요. 우리는 그들을 더 잘 이용해 보려고, 지금도 그들에게 더 노력해 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당신이 세월호가 지겹다면 우리와 같이 외치면 됩니다. 더는 밝혀낼 무엇도 남지 않도록 말입니다. 누구든 이용합시다. 정부, 다수당, 검찰, 심지어 제1야당조차도 말입니다.

당신을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심입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그것이 지겹다는 말, 문득 내 입에서도 튀어나올까봐 두렵습니다. 엘라 휠러 윌콕스의 시 ‘고독’의 첫 두 줄은 유명하지요. “웃어라, 온 세상이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이유를 설명하는 다음 구절이 더 중요합니다. “슬프고 오래된 이 지상, 환희는 빌려와야 하지만 근심은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내 근심이 무거우면 타인은 혼자 울게 내버려 두는 게 우리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지겨워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 아닙니까? 세월호의 모든 진상이 다 밝혀진다 해도 세월호 이야기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더 밝혀내야 할 것이 있으니까요. 이토록 한심한, 우리 자신의 진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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