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그 느낌과 증거 사이에서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의 진화]기후위기, 그 느낌과 증거 사이에서

백척간두(百尺竿頭)! 이 사자성어만큼 인류의 운명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기후변화 연구자들에 의하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1.5도로 억제하지 못한다면 사피엔스 문명은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2050년까지 전 세계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탄소중립)로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어쩌다 기후변화가 인류 문명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을까? 답은 인류 문명 자체에 있다. 기후는 문명의 탄생과 성장에 최대 변수로 작용해왔다. 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사피엔스가 농경이 시작된 1만2000년 전까지 수렵채집을 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빙하기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이었다. 7만4000년 전쯤 전 세계 사피엔스 인구가 2000명 정도로 줄어들어 멸종 직전까지 가게 된 것은 그 직전에 인도네시아 토바 화산이 폭발하고 그로 인해 에어로졸이 햇빛을 가려 지구 평균 기온이 12도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3만5000년 전쯤에 사피엔스와 경쟁하던 네안데르탈인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이유 중 하나도 그들이 당시 기후변화에 우리 조상만큼 잘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이 작물을 경작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1만2000년 전에 지구의 기후가 따뜻한 간빙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7000년 전쯤 4대 고대문명이 탄생한 것은 간빙기 이후 5000년 동안 진행된 해수면 상승이 그때서야 비로소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후에 절대적 영향을 받았던 인류 문명은 산업화 이후에 기후와 문명의 관계를 역전시켰다. 인류의 활동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하면서 지구는 자연스러운 기후변동을 넘어 계속해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200년 동안의 지구의 기후변화는 명백히 인류에게 책임이 있고, 전 세계는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속적인 해수면 상승, 생물다양성 감소, 식량 감소, 해양 산성화, 식수 감소, 에너지 고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이라는 경고가 뜰 때를 제외하고는 위기에 대한 각성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대체 왜 이렇게 무딜까? 진화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의 뇌는 통계적 트렌드와 장기간의 변화를 잘 이해하게끔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생존과 번식을 방해하는 ‘즉각적’ 위협에 매우 민감하게끔 진화했다. 달려드는 사자 앞에서 맹수의 출현 확률이나 장기간 출연 빈도 따위를 계산하고 있던 분들은 우리의 조상이 아니다. 먹구름이 다가오면 얼른 동굴로 대피하면 그만이었지, 5년 후의 강수량 따위를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미래보다 현재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끔 진화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의 생애 동안 지구의 자원을 다 쓰고 죽을 것처럼 소비한다. 한 세기 후의 증손주 세대에 대해서는 개념조차 희미하다. 또한 위기가 있다면 자신 말고도 누군가가 해결하겠거니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의 뇌는 소집단 규모의 수렵채집기에 적응했으므로 대규모의 복잡한 문제를 푸는 데는 취약하다. 이러한 인지 편향과 제약은 왜 우리가 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그토록 태평한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이해만으로는 백척간두를 극복할 수 없다. 진화된 느낌이 아닌 데이터가 말하는 증거를 믿게끔 모두를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진화된 느낌을 잘 활용하는 방식으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다가오는 5월22일은 기후변화의 중요한 요소인 생물다양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정된 세계생물다양성의날이다. 50년 전부터 유네스코는 ‘인간과 생물권 프로그램(MAB)’의 일환으로 생물·문화다양성 보전과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활동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생물과 환경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과학을 바탕으로 자연 및 환경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설립된” 한국의 생명다양성재단도 현재 큰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지역에서 더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릴 때, 기후위기라는 이 거대한 글로벌 이슈는 바로 나 자신의 문제로 변환될 것이다. 이런 변환만이 희망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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