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의 자리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스승의날’이라고 30대가 된 제자들이 연락을 해왔다. 고맙고도 민망한 일이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스승이 웬 말이냐고, 이젠 술친구나 하자고 해도 ‘쌤’이란 호칭을 잘 놓지 않는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그들은 고마웠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시절의 미숙함이 먼저 떠오른다. 20대 중반의 풋내기 선생 시절, 망아지 같은 사춘기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해 툭하면 울고 화내고 야단쳤다. 마음만 앞서고 몸은 따라주질 않으니 용을 쓰다가 방학식을 마치고 나면 시름시름 앓았다.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외려 내가 목격한 훌륭한 선생들은 ‘선생’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입학할 때부터 모자를 눌러쓴 채 눈을 마주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심한 따돌림을 겪은 후로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했다. 관심을 보일수록 물러서는 아이에게 더 다가가지도 못하고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나, 무력감과 초조함을 느꼈다.

입학 후 한 학기가 끝나갈 즈음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텃밭에서 기른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을 때다. 교무실로 달려와 양손에 담긴 빨간 토마토 몇 알을 들이밀며 “이거 보세요!” 했다. 아이의 선명한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아이는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의연한 듯 “예쁘네” 말했지만 울컥 눈물이 돌았다. ‘선생인 나도 못한 일을 토마토, 네가 해냈구나.’ 아이도 실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 마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이는 밭으로 가서 조금씩 자라는 토마토에게 마음을 쏟으며 스스로의 성장을 이끌어냈다.

특히 표현이 서툰 아이들에게는 사람 아닌 존재들이 변화의 물꼬가 되었다. 민들레출판사와 18년의 세월을 함께하고 3년 전 세상을 떠난 고양이 꽃네도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어른들과는 데면데면한 청소년들도 꽃네만 보면 입꼬리가 올라가며 무장해제되었다. 용돈을 모아 꽃네 간식을 사고, 당번을 정해 똥 치우고 밥을 챙기며 한층 책임감이 깊어지는 듯도 했다.

오히려 가르치려 하지 않은 이에게서 배우는 것을 보며 교사로서의 자리를 생각했다. 앞서서 진두지휘하려 하지 말자고. 교육주체로서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 삶에서 한발 물러서서 조력하는 사람이다. 아이들 곁에서 느낀 것은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꿈꾼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 욕구가 서툰 방식으로 표현되고, 느리게 발현되더라도 모든 인간은 그렇다. 그 진실 하나를 믿고 물러서서 관찰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하고 싶은 순간, 그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고.

<스승은 있다>에서 우치다 다쓰루는 말한다. “인간은 배울 수 있는 것밖에 배울 수 없다. 배우는 것을 욕망하는 것밖에 배울 수 없다.” 그것이 배움의 주체성이라면 교사는 가르치는 이가 아니라 배움의 동기를 만드는 사람인 셈이다. 오늘날 교사의 전문성이란 더 이상 지식 전달을 뜻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사람’이란 명명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스승이란 말이 민망한 시대에 스승의날을 맞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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