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 변할 때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학부모와 학생 상담을 할 때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는 교우관계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 외에 가족관계가 없는 외둥이인 경우가 많고 만나는 사람이 다양하지 못해 사회정서적 기술이 부족하다. 코로나19로 관계를 맺는 일은 더욱 힘들게 됐다. 친한 친구가 생겨도 어려움은 남는다. 상대를 친밀하게 여기는 마음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우정도 사람 사이의 일이라 시간이 지나며 변하기 때문이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유미와 진이는 같은 반 단짝이었는데 얼마 후 둘의 관계가 돌변했다. 진이는 유미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가까이 가면 피했다. 갈등이 풀어지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났고 해마다 학년을 마칠 때면 유미 어머니는 담임에게 진이와 반을 다르게 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유미는 학교에서 진이를 마주치면 옛 기억이 떠올랐고, 다른 아이들에게 진이가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 뻔뻔한 아이라고 소문을 냈다. 진이는 예전 일을 후회하지만 유미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아서 힘들었다. 자신이 친구들에게 나쁜 아이로 낙인찍히고 혼자가 될까 두려웠다.

유미는 절친에게 배신당했다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진이를 비난하고 공격했다. 진이는 잘못에 대한 죄책감과 친구관계가 끊어질까 불안감에 시달렸다. 유미와 진이는 서로 자신을 희생자로 여기며 이 상황을 해결할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 무엇이 필요하고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은 채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려면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며칠 뒤 두 사람은 서클에서 만나 내면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들은 것을 상대에게 돌려주는 말하기 방식을 통해 갈등의 이면에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진심을 확인했다. 진이는 다른 친구와 단짝이 되고 싶었던 마음을 솔직히 말하지 않고 유미를 멀리했던 것을 사과했다. 사후 서클이 열릴 때까지 집에 초대해서 함께 놀기로 이행 약속도 정했다. 밝고 희망차게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보냈는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그날 오후 진이 어머니가 학교로 연락했다. 유미와 가까워지는 것이 내키지 않으니 약속을 못 지키겠다는 것이다. 유미도 잘못한 게 있는데 자신의 아픔만 크고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하는 것이 못마땅했고 친해졌다가 또 이런 일이 반복될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문제가 오래된 만큼 어머니의 마음도 복잡했다. 불편한 관계를 피하는 것은 정말 자녀를 위한 일일까? 유미와 진이의 관계가 다시 좋아지지 않아도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이별하는 것이 가능할까?

삶은 자신이 맺는 관계로 구성된다. 관계를 맺으며 타인의 삶과 연결되고 자신의 경계를 확장하고 성장한다. 특히 어린 시절의 대인 관계 경험은 뇌의 인지구조에 각인된다. 행복했던 관계 경험은 든든한 자존감의 바탕이 되지만 괴롭게 끝난 경험은 관계 자체를 두렵고 힘든 것으로 인식하여 왜곡된 관점을 만들 수 있다. 관계에서 받은 상처에 머무르면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한 인간으로 성숙해질 기회를 놓치게 된다. 아이들이 친구관계에서 겪은 아프고 괴로웠던 경험을 회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마무리하도록 돕는 것이 어른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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