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 스쿼드’가 던진 질문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게임 ‘엑스컴’ 시리즈는 지구를 침략해 온 외계인과 싸우는 지구방위군 이야기라는 전형적인 SF 세계관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텔레파시, 강력한 근력, 말도 안 되게 발달한 가공할 첨단 무기들로 무장한 외계인을 고작 소총 같은 무기로 막아내는 게임의 난도는 상당해서, 수시로 소중하게 키운 아군 베테랑 병사가 쓰러져 나가는 통에 무척 재미있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며 다시 불러오기를 반복하는 게이머들이 적지 않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강력한 힘을 가진 외계인과 이에 맞서는 인간이라는 구도는 ‘엑스컴’의 상징과도 같은 갈등 구조였고, 이는 2010년대의 리부트 작품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며 전투의 의미를 발생시키는 갈등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2020년 출시된 스핀오프 격 작품인 ‘엑스컴: 키메라 스쿼드’는 시리즈의 핵심 전통이었던 ‘인간 대 외계인’이라는 갈등 구조를 기묘하게 틀어내며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의미를 선보였다.

‘키메라 스쿼드’의 배경은 원작에서 벌어진 인간 대 외계인의 전투가 끝난 지구다. 극적인 인간 승리로 전쟁은 끝났지만, 혼란해진 사회에서 치안은 극도로 나빠졌고 플레이어는 이제 군인이 아닌 치안유지팀 입장에서 테러세력과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임무를 맡아 새로운 전투에 투입된다.

흥미로운 건 원작처럼 인간 대 외계인이라는 명확한 갈등 구조가 게임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적들은 외계인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하기도 하는 범죄조직 전반으로, 인간과 외계인이 완전히 뒤섞인 구성을 보인다. 전후 미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외계인 패잔병들이 고스란히 남아 인간과 함께 거주하기 시작했고, 혼종화된 게임 속 도시의 범죄는 게임의 중심 갈등을 인간 대 외계인이라는 종족 갈등에서 치안 대 범죄조직이라는 다른 구조로 옮겨 나간다. 이런 변화는 플레이어의 부대도 외계인이 포함된 구성으로 만들어버린다. 게임 제목인 키메라 스쿼드는 이 혼종적인 부대 구성을 가리킨다. 전작에서 플레이어와 맞서 싸웠던 외계인들은 이제 플레이어의 명령에 따라 독을 쏘고 정신착란 공격을 하면서 혼종화된 도시의 치안에 기여하는 영웅의 위치에 선다.

그러나 실존 세계가 혼종화한 것과 달리 게임 속 사람들의 인식은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전후 혼란기 테러와 범죄의 배경으로 ‘인간’은 지구에 잔류한 외계인들을 의심한다. 플레이어의 치안유지팀은 ‘저 외계인 커뮤니티가 수상하니 가서 타격하라’ 유의 명령을 받지만, 막상 현장에 출동해 적을 제압하고 증거를 찾아보면 이 공격과 수사가 매우 억울한 무엇이었음이 드러나곤 한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 고물을 주워다 팔던 외계인 고물상을 ‘고물로 우주선을 만들어 테러를 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어떤 차별과 편견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키메라 스쿼드’는 고전적인 갈등 구조의 두 축을 변화시키며 ‘우리’라는 범주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라는 범주를 상정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가 아닌 것의 경계를 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종과 성별, 국적을 넘어 최근에는 인간의 범주 밖으로 여겨졌던 많은 것들에 대한 새로운 범주 설정 문제들이 제기되는 상황과 게임의 질문은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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