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차별금지법을!

오수경 자유기고가

내가 일하는 곳은 개신교 단체라서 ‘젠더’ ‘차별금지법’ 등 사회 이슈에 의견을 내는 게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몇해 전 어느 교단에서는 우리 단체를 포함한 몇 개의 개신교 단체를 자신들의 신학적 견해와 다르다며 불온한 단체로 규정했다. 지난해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연명했다가 반대하는 이들의 항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얼마 전에는 3년 동안 우리 단체를 후원해 온 이웃 단체가 일부 개신교인들의 항의를 받고 결국 후원을 중단하게 된 일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 단체 상황은 나은 편이다. 성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의미로 무지개 티셔츠를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가 신학교에서 징계를 당하거나, 퀴어 퍼레이드에서 축복 기도를 했다가 목회 정지 처분을 받는 등 구체적 피해를 당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성 소수자를 ‘반대’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으려는 보수 개신교인들의 노력은 정말 집요하다.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이들을 낙인찍고, 고립시킨다. 이들의 영향력은 교회 밖에서도 쩌렁쩌렁하다. 차별금지법 관련 토론회가 열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몰려가 훼방을 놓고, 관련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에게도 무차별 항의를 한다. 인터넷에서는 트롤링(Trolling)을 선교 활동으로 여기며 적극 실천한다.

이렇게 ‘혐오의 볼륨’을 높이는 이들이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게 문제다.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논의를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명백한 ‘착시’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개신교를 대표하지 못한다. 사회가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가 복합적이듯, 개신교 안에도 다양하고 복잡한 흐름이 공존한다. 최근 우리 단체에 오히려 후원이 늘었다. ‘다름’을 허용하지 않으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벌어진 흐름이다. 혐오가 거세지자, 연대가 고개를 든 것이다. 이런 경험이 비단 우리 단체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혐오의 언어와 선동이 변화의 물결을 가로막을 때, 사랑의 언어와 실천이 단단한 변화의 흐름을 만든다.

서강대 총장 심종혁 신부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주교 교리도 바뀔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가 모르던 것을 알게 되죠. 그렇다면 기존의 입장은 바꿔야 되지 않습니까?” 동의한다. 사회보다는 느리겠지만 종교도 사회 변화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으며, 그럴 수 없는 종교는 낙후되고 고립될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의 존재는 오히려 이 법이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사회가 무너지고 교회는 망한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과는 달리 이 법은 종교가 사회 변화에 기여하며 본질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착시에 갇혀 ‘혐오’가 승리하게 하는 경험이 아니라 ‘존중과 평등’이 이기는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혐오의 언어가 요란스레 만들어내는 찰나의 흐름에 속지 말고, 필요한 일을 담담하게 하자. 국회는 ‘일부’ 개신교인들의 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두려움 없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시라.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https://bit.ly/equality100000)에 동참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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