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언의 풍경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얼마 전 울릉도에 다녀왔다. 이장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와 경상북도, 울릉군이 함께 만든 울릉천국 문화센터에서 대화를 나눴다. 1970년대 포크계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가 막히게 좋은 날씨 아래, 기가 막히게 좋은 풍경을 옆에 두고, 맛있는 와인과 안주를 나누며 듣는 이야기가 생생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의외였던 건 레너드 코언의 존재였다. 흔히 그 시절 한국 포크계에 영향을 준 팝 뮤지션으로 밥 딜런, 피터 폴 앤 메리, 존 바에즈 같은 이들이 거론되긴 하지만 레너드 코언이 인용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당시 여러 인기 뮤지션들의 노래가 한국어로 번안되어 남아 있지만, 레너드 코언의 곡은 그랬던 적이 없기 때문일 것 같다. 이장희는 특히 조동진에게 레너드 코언이 끼친 영향을 말했다. 코언의 데뷔곡이었던 ‘수잔’에 경이된 조동진이 끝까지 그 스타일을 고수했노라 말했다. 일평생 시와 음악을 한 몸처럼 여겼던 조동진의 음악을 떠올리며 속으로 무릎을 쳤다.

서울로 올라와 다시 코언의 음악을 들었다. 조동진과 김민기에게 영향을 준 초창기 앨범부터 2019년 발표된 유작 ‘Thanks for The Dance’까지 들으며 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레너드 코언을 꼽아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인생의 어떤 특별한 순간들을 연출하곤 했다. 2012년 초, 8년 만에 내놓은 앨범에 담긴 ‘Amen’을 김창완과 그가 진행하던 방송에서 함께 들었다. 그의 숭고한 표정이 생생하다. 언젠가 제주 여행에서 친구와 석양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했다. 내가 ‘Take This Waltz’를 틀었을 때 녀석은 차를 세우고 멍하니 노을만 바라봤다. 무엇보다 처음 뉴욕에 갔을 때의 일이 새삼스러웠다.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는 196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가 있던 곳도 여기고 수많은 문인과 화가, 음악인이 활동하던 동네다. 이 지역을 상징하는 곳이 있으니 이름하여 첼시호텔. 낡은 호텔이지만 팝 음악사의 성지 중 하나다. 1960년대 밥 딜런, 재니스 조플린, 패티 스미스, 톰 웨이츠, 이기 팝 등이 젊은 시절 묵으며 음악과 시를 썼던 곳이다. 청년 레너드 코언은 여기서 우연히 재니스 조플린을 만났다. 둘은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그 추억을 코언은 ‘Chelsea Hotel #2’라는 곡으로 남겼다. 전설적인 예술인들이 거쳐간 이곳 입구에는 코언의 업적을 기리는 현판이 붙어 있다.

팝 역사의 별들과 수많은 인연이 있는 뉴욕, 그중에서도 굳이 코언의 흔적을 좇은 이유는 그가 발표했고 R.E.M이 리메이크했던 ‘First We Take Manhattan’이란 곡을,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가사 내용과 상관없이 R.E.M의 보컬 마이크 스타이프가 이 노래에서 보여줬던 설렘과 불안함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꽤 많은 풍경을 코언은 만들어냈다. 가창력에 연연하지 않고, 청년 시절부터 노년 시절까지 시와 음악, 낭송과 노래를 하나로 연결하며 빚어낸 그만의 아우라 덕분일 것이다. 원체 많은 신화적·종교적·역사적, 그리고 문학적 비유를 담고 있기에 코언의 가사를 직접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느낀다.

출근길, 한양대를 지나 멀리 서울숲이 보이는 지하철에서 ‘Thanks For The Dance’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해졌다. 그의 음악이 마음을 넘어 풍경과 동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며칠이면 잊혀질 세상의 잡다한 소식 따위, 모두 하찮게만 느껴졌다. 왜 젊은 날의 조동진이, 60대의 김창완이 그런 길을 걸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햇빛 눈부신 아침, 코언이 또 한번 음악의 그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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