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책고집’ 대표

“트라우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 깨나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말이다. 우리에게도 그에 대응할 만한 말이 있다. ‘4할도 못 치는 바보, 김현수’가 그것이다. 트라우트(Mike Trout, LA에인절스)나 김현수(LG)를 염려하는 건 정말이지 쓸데없는 걱정이다. 세상 걱정할 것이 없어서 그들을 걱정한단 말인가. 그런 걸 기우라고 한다. 중국의 기(杞)나라 사람 중에 하늘이 무너질 것을 걱정했던 이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프로야구에만 기우가 있는 건 아니다.

최준영‘책고집’ 대표

최준영‘책고집’ 대표

1년 반 넘게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다 보니 어느덧 거리 두기와 영업시간 제한에 길들여졌다. 초기엔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인간관계 다 깨지는 것 아닌가, 강연 시장은 얼마나 얼어붙을 것인가, 자영업자들의 손실은 어쩐단 말인가. 우려가 속속 현실이 되기도 했다. 사람 못 만나며 산 지 오래고, 강연 시장은 그예 얼어붙었다. 비명을 지르던 자영업자들은 도리 없이 폐업 행렬에 줄을 섰다. 관광업계 노동자 대다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암담한 현실이다. 이대로 세상이 끝날 것만 같다.

뜻밖에도 코로나는 불안과 공포만 키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고통스러운 일들이 지구에는 긍정적인 신호가 되었다. 땅과 하늘, 바다의 교통이 줄자 대기가 맑아졌고 바닷물이 청결해졌다. 심야 음주가 사라지면서 범죄가 줄었고, 가족의 시간이 늘었다.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서 사람과 지구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막연한 불안과 공포가 여지없이 절망으로만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 역시 기우였다.

집권여당 일각에서 대선 후보 선출 일정을 연기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1등 후보의 독주를 저지해 보겠다는 정치공학적 노림수였다. 후보를 일찍 선출하면 검증공세에 시달릴 것이며, 컨벤션 효과도 노릴 수 없게 된다는 논리였다. 그럴싸하게 들렸지만 그 역시 기우였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먼저 선출된 후보가 떨어진 적은 딱 한 번밖에 없다. 4·7 재·보궐 선거를 예로 들지만, 그 역시 궤변이다. 민주당이 4·7 선거에서 진 이유는 후보를 일찍 냈기 때문이 아니라 내지 말아야 할 후보를 냈기 때문이다. 패배보다 심각한 타격은 당헌·당규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민주당으로선 대선 후보 조기 선출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환점일 수 있다. 국민의힘 당대표 이준석 돌풍이 거센 데다 범야권 대권 주자들이 속속 모여들 조짐이다. 송영길 단일 대표 체제로선 위기이며,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예정대로 9월에 대선 후보를 확정하면 자연 ‘투톱체제’가 가동될 것이다. 다시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올 가능성이 열린다.

청와대가 25세 청년비서관을 발탁했다. 그 발탁에 박탈감을 느꼈다는 사람들도 있다. 청년문제는 청년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잘 아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다른 문제다. 섣부른 당사자주의는 위험하다. 당사자마저 해결 못한다면 그다음은 없다. 더구나 포퓰리즘의 혐의가 짙다.

당사자주의의 폐해를 잘 보여주는 우화가 있다. 러시아 어느 도시의 주민 대부분이 근심에 빠져 있었다. 그 탓에 시장 역시 근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근심하는 시장을 근심하던 참모가 시장에게 조언했다. 근심 담당 공무원을 뽑아서 전담하게 하자는 것. 모집 공고를 내자 근심에 일가견을 가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고심 끝에 지원자 중 가장 근심이 많아 보이는 사람을 근심 담당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되고 말았다. 면접 땐 온갖 근심을 다 짊어진 것 같던 그가 합격과 동시에 돌변했다.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출근하는 것이었다. 자기 근심을 해결한 그는 더 이상 근심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청년비서관 발탁이 뭇 청년들에게 박탈감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은 어쩌면, 트라우트나 김현수를 걱정하는 것과 같은 기우가 아닐지 모른다. 청년문제는 그만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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