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의 가치

박진웅 IT 노동자

소셜믹스라는 말을 아는가? 계층이 다른 사람들끼리 섞이는 것을 뜻한다. 부유한 사람들과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 주거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코웃음이 났다. 한쪽은 언제든 필요하면 호텔 VIP라운지로, 하와이의 해변가로 놀러갈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은 아무리 거지같아도 주거지원 정책에 목을 매달고 살아야 한다. 이들이 서로의 생활상 속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까.

박진웅 IT 노동자

박진웅 IT 노동자

부유한 자와 빈곤한 자의 삶은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극과 극에 있다. 그러나 부유한 이가 빈곤한 이를 이해하는 것과, 빈곤한 이가 부유한 이를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부유한 이의 이해는 유희에 가까운 것으로, 가난은 다 이유가 있다며 스스로의 부를 정당화하는 도구와 우월감을 느낄 재료로나 안 쓰면 다행이다.

누구든 한 세대에 걸쳐 노력하면 얼마든지 빈곤을 벗어날 수 있고, 자기만의 집을 얻을 수 있으며, 노후 빈곤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괜찮다. 그러나 지독한 취업난에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젊은이들, 직업의 불안정성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삶, 치솟는 도시의 주거비용과 오르지 않는 임금 앞에서 계층 이동을 위한 노력은 떨어지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이런 현실에서 소셜믹스란 빛 좋은 개살구다.

계층 이동을 위해 사람들이 가상통화에 열광하고, 어린이들이 유튜버를 장래 희망 1위로 놓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자. 공부하고 노력해서 좋은 직장을 얻고 열심히 일하며 산다는 불과 10~20년 전의 말이 점점 무가치해지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전시된 이들의 삶은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을 통해 성공한 삶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나는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기에도 바쁜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성공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박탈감과 조바심은 금세 불안이 된다.

그들의 삶에 비춰보면 내가 매일 바치는 노력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가치하게 느껴질까? 누군가는 내가 죽어라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손쉽게 누리고 있는데. 그걸 보며 자극받고 열심히 해야지 마음먹는 것도 한두 번이다. 해도 안 될 거라는 자포자기 이면에는 계층 이동이 꽉 막혀버린 현실이 있다. 그러니 다들 일확천금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과 조바심, 박탈감을 양성하는 오늘날이기에 더더욱 꾸준함은 미덕이다. 모든 일이 빠르고 급한 오늘날 진짜 꾸준한 사람은 드물다. 나 역시 내 동년배에 나보다 잘하는 사람, 나보다 성공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속이 많이 상했다. 그러나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노력한 덕에 분명 몇 달, 몇 년 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성공한 이들에게는 사소하고 우스운 발전이지만, 사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와 내 삶이 어떤지는 별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도망치지 않고 버티어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과 삶의 방식을 겨루며 살아간다. 겨루기 싫으면 피해도 좋고, 이 시대를 가만히 흘려보내도 좋다. 그러나 기왕 사는 거 희망이 부족해도 삶을 걸어 보는 것이다. 지름길을 찾느라 방황하고, 불안과 초조함에 마음을 할퀴는 대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하루를 살아보는 것이다.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은 속도를 강요하지만, 우리는 방향으로 승부하면 그만이다.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를 만드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망가진 사다리를 앞두고도 어제보다 나은 나로 사는 것은 오롯이 나의 일이다. 그러니 희망보다 절망이 커 보이는 오늘날에도 자신의 하루를 온전히 걸고 살아나가는 우리야말로 모두 한편이다. <노인과 바다>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다.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 살아가는 모두에게 꼭 보답을 받으리라는 응원을 보낸다.


Today`s HOT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불타는 해리포터 성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