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대표! 문제는 ‘할당제’가 아니야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할당제 폐지’ 논의를 제기했다. 좁게 보면 공천에서 청년·여성·호남 할당제를 폐지한다는 내용이지만, 그가 늘 얘기했던 공정과 능력주의의 맥락과 일맥상통하기에 그의 정치이념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정치 이외의 영역에서도 할당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그런데 할당제가 정말 문제일까? 여성할당제만 놓고 보자. 얘기가 하도 많이 나오니 온 세상이 여성할당제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 적용되는 영역은 극히 일부다. 일단 공직선거에 적용되는 여성할당제가 있다. 공무원 임용에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가 있지만, 여성은 더 이상 그 수혜자가 아니다. 민간기업에서는 여성할당제 자체가 없었는데, 2019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여성 임원 할당제가 도입되었다.

2003년까지만 해도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5.9%에 불과했는데, 2004년에 13%로 늘었고 2020년에 이르러야 겨우 19%가 되었다. 2000년대 이후 법률로 여성할당제를 강제하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힘 최고위원 선거에서 4명 중 3명이 여성이 당선되었다며, “더 이상 우리 당에서 여성이 불리한 위치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 여건이 마련된 것은 여성할당제 덕분이었다.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 19%는 세계 121위에 해당한다. 할당제 폐지를 논의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할당제는 도구일 뿐 목표가 아냐
여성할당제만 놓고 봐도,
실제 적용되는 영역은 극히 일부
대안이 고작 토론 배틀과 시험?
안이한 현실 인식이 놀랍다

세계 각국에서도 정치에서 여성 대표성을 강화하려는 ‘인위적’인 노력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여성의 정치 대표성 제고를 위해 ‘남녀동수법’을 통과시켰고, 선출직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헌법에 추가했다. 범아프리카의회에서는 각 회원국의 3분의 1을 여성으로 구성한다는 의정서를 채택했다.

2019년 기준으로 상장기업의 CEO 중 여성은 3.6%, 여성 임원은 4.5%에 불과하다. 요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때문에 어떻게든 여성 임원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여성 임원 할당제다. 자산총액 2조원이 넘는 상장기업에 한해, 임원 중 1명 이상을 여성으로 임명하게 한 정도이며, 그나마도 강제적 효력은 없다. 세계 각국이 여성 임원 할당제를 공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오히려 뒤늦은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기업들의 자율적인 노력에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하여 할당제가 도입된 것이지만, 할당제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할당제는 평등을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강제적인 할당보다는 차별을 묵인하고 조장하는 환경을 개선하여 평등한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궁극의 대안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고 너무 오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할당제가 대안으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현행 남녀고용평등법과 차별금지법안에는 할당제처럼 적극적으로 평등을 실현하는 정책은 ‘잠정적’ 조치일 때에만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할당제 말고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할당제를 고집할 이유가 전혀 없다. 평등한 여건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할당제로 면피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다른 더 중요한 조치들은 내팽개치고 할당제만 홀로 남겨두었을 때 할당제의 폐해가 극대화될 수 있다. 할당제가 그렇게 고립되면, 할당제가 오히려 기득권을 공고하게 만들어주게 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할당제가 할당된 숫자에 갇히는 것이야말로 기득권자들이 바라는 바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할당제의 긍정적 효과가 임계점에 도달하는 시기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할당제를 두고 건설적인 토론을 벌이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다양한 집단의 대표성을 강화하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할당제 아닌 다른 대안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할당제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할당제의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한마디 툭 던지는 것은 쉽지만, 할당제가 아닌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차별이 종식되었다고 선언하거나 나름대로 내놓은 대안이 고작 토론 배틀과 시험이라니 그 안이한 현실 인식이 놀라울 정도다. 형식적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 정도로 수많은 세월 동안 겹겹이 쌓여왔던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 할당제에 대한 검토는 필요하지만, 이런 식의 할당제 논의는 무책임한 정치선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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