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을 걱정하는 정치는 필요 없다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상위권으로 이뤄진 ‘심화반’ 학생이 ‘성적 향상은 내 자신의 잘못이 아니니, 심화반 교육비를 면제해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일반반’ 학생은 심화반이나 사교육은커녕 일반 학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말이다. 물론 고득점은 심화반 학생의 잘못이 아니다. 교육 ‘비용’을 ‘징벌’로 이해하면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심화반이라는 제도는 향후 성적을 높이기 위한 학교의 선별적 지원을 뜻한다. 비용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는 것이다. 상식적인 학교라면, 방과 후 교육 인프라를 더 제공하는 학생에게 비용을 ‘조금’ 더 받고, 학비가 부담되는 학생들의 교육비는 최대한 덜어주는 것을 선택할 테다. 이러한 상식은 국가에도 적용된다.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여당은 최근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상위 2%에게 부과하고,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의 경우 12억원으로 완화하는 정책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여당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수없이 많은 민생 현안 중, 보유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이전까지는 내지 않던 종부세를 내야 하는 사람들의 과세 부담이 하필 걱정된 것이다. 현행대로라면 상위 4% 내에 해당하던 대상이 개정안을 통해 2%까지로 줄어든다. 여당은 대대적인 고심 끝에 자산 이득을 충분히 취한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주기 위해 결단을 감행했다.

오늘의 정치가 대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나 싶다. 청년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과 계약직 노동자인 가운데, 코로나로 인해 실업률은 치솟으며 단순 노무 종사자의 증가로 대부분은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소득 불안은 고정 지출되는 월세 부담의 증가로 이어진다. 그런데 정치는, 당장 몇십만원을 낼 수 없어 퇴거 위협을 받는 세입자를 방치한 채 9억원이 넘는 아파트 소유자들의 월 10만원 부담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대 1인 가구 청년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소득이 낮아도 주거급여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불합리한 사각지대의 해결을 정부와 여당에 요청해도 예산상의 이유로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세울 때조차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직접적인 지원 예산은 외면받았다. 그런데 상위 4%의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정치의 움직임은 한없이 기민했다. 종부세를 둘러싼 오늘의 주장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잡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의 가치는 오를 수 있다. 오른 만큼 혜택을 누리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지면 된다. 그것이 공정한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투기를 권장하는 나라에서, 누구도 감히 ‘부동산 영끌’을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없다. 자산양극화는 점차 심화되고 노동 소득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다. 상위 4%만을 위한 정치를 계속하는 사람들에게 더는 기대할 여유가 없다. 이 시대는 욕망을 부추기기보다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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