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세대가 ‘사이다’ 전개를 원하는 이유

김태권 만화가
[창작의 미래] 스마트폰 세대가 ‘사이다’ 전개를 원하는 이유

“아래로 쭉쭉 스크롤을 내리며 보는 (…) 스마트폰 세대 독자들은 주인공의 ‘성장’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대사량이 적고 속도감 있는 ‘사이다’ 전개를 원한다.” 6월 초 한국일보에 이현석 엘세븐 대표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 기사가 내 눈길을 끈 이유는, 웹툰을 연구하는 박인하 선생과 이재민 평론가도 같은 현상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옛날 독자들은 주인공이 죽도록 고생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요즘 독자는 그런 이야기를 식상하다 여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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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도 상황이 비슷하다. 옛날에 게임하던 사람들은 어렵고 지루한 미션을 반복했다. 아이템을 얻고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반대로 요즘 대세는 방치형 게임이다. 예전 칼럼에도 지적했지만, 일수 찍듯 한번씩 게임을 켜면 알아서 레벨이 쌓여 있는 것이다.

옛날 사람은 고생담을 즐겼는데 요즘 사람은 아니라는, 이런 현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회현실과 관계가 있을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요즘 사람은 고생하고 ‘노오력’하기 싫어해 그렇다”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말이다. 반대로 “요즘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는 지나치게 고생하고 ‘노오력’하기 때문에 허구의 세계에서조차 그런 이야기를 반복하기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내가 말을 보탤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깊이 있는 평론을 기대해 본다.

읽기 능력의 문제는 짚고 넘어가자. 어떤 사람은 “요즘 사람은 영상을 많이 봐 읽기 능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내 생각은 반대다. 요즘 사람이 옛날 사람보다 읽는 양이 적을까? 고전만 따지면 옛날 사람이 많이 읽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신문, 광고, 단톡방, 웹사이트까지 치면 요즘 사람이 더 많이 읽는다. “아래로 쭉쭉 스크롤을 내리며 읽기”는 읽기가 서툰 사람은 할 수 없는 기술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모든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죽도록 고생하는 내용이 들어간다고 했다. 이야기 작법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오랫동안 이 말에 동의해왔다. 모든 이야기가 조금씩은 서로 닮았다는 뜻이다. 요즘 사람이 “사이다 전개를 좋아하는 까닭”은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많이 읽어보지 않은 어린 독자라면 주인공이 고통을 겪을 때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괴로워할 터이다. 하지만 경험 많은 독자라면 주인공이 죽도록 고생하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또 시작이군’이라고 생각하며 후루룩 넘어가버릴 것이다. 같은 장르의 웹툰과 웹소설을 동시에 여러 편씩 읽는 요즘 독자가 이런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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