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노선은 강경 보수

김태일 장안대 총장

보수정당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명을 바꾸고 변화를 도모할 때마다 노선 조정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왼쪽으로, 어떤 때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김태일 장안대 총장

가장 긴 기간 동안 당명을 유지했던 한나라당이 연거푸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2012년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때 보수정당의 강령에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경제민주화’였다. 모두 놀랐다. 보수의 정체성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보수정당 내부에서 대뜸 튀어나왔다. 보수정당의 기존 강령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성장’이 있었지 ‘경제민주화’란 말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제민주화와 마찬가지의 금기어였던 ‘복지’라는 용어도 이때 나타났다. 당시로는 놀랄 일이었다. 당연히 강경한 보수우파 노선을 견지하는 쪽에서 반발이 나왔다. 한 보수 논객은 그러한 변화를 가리켜 헌법정신을 배반하는 일이며 보수의 적이라고까지 비난했다. 투항노선이라는 매몰찬 얘기도 나왔고, 보수의 비극이라는 통탄도 쏟아졌다.

그런데 이런 보수정당의 ‘좌클릭’은 전략적으로 성공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 걸고 중도확장을 도모하여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승기를 잡았다. 크지 않은 차이로 승리를 했기 때문에 노선 조정의 의미는 울림이 컸다.

그 후, 보수정당이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새로운 위기에 빠졌을 때 다시 당의 이름을 바꾸고 노선을 조정하는 작업이 있었다. 새누리당 간판이 내려오고 2017년 자유한국당의 깃발이 올라갔다. 이번엔 ‘우클릭’이었다. 자유한국당 강령에서 경제민주화, 복지와 같은 개념은 뒤로 밀리고, 보수정당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가 앞자리를 차지했다. 자유한국당의 강령 제정은 극우파 이론가들이 주도했고 같은 노선을 가진 지도자들이 당을 지배했다. 그러나 보수정당의 패배는 멈추어지지 않았다.

암담한 상황에서 다시 비상체제로 대오를 정비한 것이 2020년 국민의힘이었다. 국민의힘은 다시 ‘좌클릭’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민의힘 강령은 과거 새누리당의 그것보다 더 선명한 변화를 담았다. 국민의힘은 강령의 앞부분에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올렸다. 이것은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칼날 같은 논쟁 위에 놓인 주제인데 국민의힘은 과감한 실험을 선택했다. 이와 함께 경제민주화, 복지, 사회통합 등의 가치들을 다시 불러세웠다. 보수정당의 메뉴에는 익숙지 않았던 노동의 가치도 등장하였다. 이러한 강령이 본래의 취지대로 잘 구현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노선 변화를 통하여 보수정당이 지지기반을 확장하여 다수파가 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국회의원 경험이 전혀 없는 30대 젊은 지도자를 당대표로 선출하여 국민의힘의 변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지지가 계속 갈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지금 이것은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지난 화요일 있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기자회견은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좀 의아하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을 지내고 바로 정치판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장광설을 요약하자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와 같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는 얘기였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동기도 동기지만 문제는 그의 정치적 가치와 노선이다. 그가 한 말의 조각을 맞추어보면, 윤석열은 보수노선 가운데서도 강한 보수노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인상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유’라는 가치를 강조했다. 그리고 자유를 바라보는 관점이 민주당과 다르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민주당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제외하려 한다고 공격을 하였다. 더 나아가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이며 전제라고 비판했다. 여기에서 윤석열이 사용하고 있는 ‘자유’의 개념이 무엇인가를 따질 필요는 없다. 확실한 것은 그가 쓰는 자유라는 개념이 보수 강경 우파들의 용례와 닮았다는 점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새누리당(2012), 국민의힘(2020)은 자유와 시장이라는 개념을 확장하여 포용, 약자 보호, 경제민주화, 참여, 노동 존중 가치 등을 천명하였다. 이와 달리 보수 강경 노선을 채택했던 자유한국당(2017)이나 우리공화당(2017)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 등을 전면으로 내걸면서 ‘태극기 애국시민’이 그 담지자라는 주장을 하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노선은 현 국민의힘 노선보다는 전 자유한국당 노선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런 경우에도 윤석열의 정치적 앞날이 계속 힘을 받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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