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꾼의 ‘아무튼 이름’

지난달 10년 넘게 일하던 온라인 서점을 떠나 출판사로 일터를 옮겼다. 당연히 하는 일이 바뀌고 불리는 이름도 바뀌었다. 주변에서는 나의 운명보다는 ‘바갈라딘’이라는 별명이 어찌 되는지에 관심이 컸다. 성씨 ‘박’에 회사 이름 ‘알라딘’이 연결된 모양새라 직장에 모든 걸 쏟아붓는 사람처럼 오해받기 십상이지만,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 선생님이 우연히 지어주신 별명이라 애착을 갖고 지내온 세월이 쌓였고, 업계 동료들 사이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부캐’처럼 여겨지며 본명보다 자주 불렸기 때문이다. 마침 새로 일하게 된 회사에서는 수평 호칭으로 별칭을 사용하기에 자연스레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고, 앞으로 한동안은 ‘테오(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 반 고흐)’로 숱한 편지를 받으며 살아갈 예정이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이렇게 이름 정리가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남은 과제가 있었다. 책을 소개하는 역할로 여러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데, 직업을 그대로 옮긴 ‘온라인 서점 엠디(MD)’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표현이 필요했다. 방송 제작진은 비슷한 역할에 자주 사용되는 ‘출판평론가’를 권했지만, 책을 평하거나 소개하는 역할과 출판을 평론하는 역할은 구분되는 일이라 생각해왔기에 다른 이름을 찾아보았다. 책을 전하려면 우선 맥락과 상황에 맞는 책을 골라야 하고, 고르는 데에서 많은 내용이 결정되곤 하니 ‘북큐레이터’가 ‘출판평론가’보다 명실상부하지 않은가 싶었다. 여기에 책을 말하는 생동감과 흔히 사용되지 않는 고유함을 더하고 싶었고, 결국 ‘책이야기꾼’으로 낙점이 되어 전파를 타고 있다.

남들에게 불리는 이름을 떠올리다 보니 “책을 만들고 팔고 알리는” 과정에 함께하는 이들이 무엇이라 불리고 있는지도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침 책이 독자에게 전해지기까지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라는 선물>에서 이들을 한데 모아두었기에 이름을 적어본다. 편집자, 북디자이너, 교정자, 인쇄, 제본, 총판, 영업, 서점인, 이동식 책방 주인, 비평가. 일본 출판계를 담은 앞선 책과 어울리는 한국 출판계의 이야기로는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 책에서 부른 이름은 다음과 같다. 문학편집자, 저자, 번역자, 인문편집자, 북디자이너, 출판제작자, 출판마케터, 온라인 서점 엠디, 서점인, 1인 출판사 대표. 각각의 얼굴이 떠올라 반갑고, 책을 만나는 독자 역시 책을 펼치기 전이나 덮고 난 후에 각각의 이름에 어울리는 어떤 모습을 잠시라도 떠올려보기를 희망한다.

출판사에서는 이름 짓는 일이 잦다. 책 제목이 책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고,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고, 편히 읽히면서도 오래 기억되고 등등 숱한 기대를 제목에 모으려 애쓴다. 제목에는, 이름에는 이런 마음과 고민과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워낙 많은 책이 나오니 제목 하나하나를 기억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제목이 무엇이든 앞서 나열한 이름들은 포함되어 있다. 어디에든 책이 있다면 그들을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생각은 다시 나로 돌아온다. 앞서 소개한 책에도 등장하지 않는 ‘편집본부장’이란 이름은 책의 어디쯤에서 어떻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일까. 궁금함이 생기는 이름이 매력적이라는 착각을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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