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

다시 선거의 계절, 대선 주자들이 넘쳐난다. 그들의 출사표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박사과정 시절 대통령후보였던 분의 유학생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때 호감을 가졌던 분이라서 참석해 질문을 하나 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정치적 수사의 말들 말고, 정말로 대통령이 되어서 이루려던 꿈이 무엇이냐고. 그분이 답하길, 민족의 과업인 통일이라는 기관차의 기관사가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망이 컸다. 무엇인가 생선처럼 파닥파닥 살아 숨쉬는 듯한 꿈이 있을 줄 알았는데 지극히 교과서적인 대답이었다. 아무런 감흥도 감동도 느낄 수 없었다. 결국 그분은 또 낙선했다. 생각해 보면 그의 의식 저변에는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인식이 짙게 배어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왜 대통령 자격이 되는지를 피력하는 데 골몰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몇 년 더 흘러 이번에는 상당 기간 압도적인 여론 지지를 받았던 분인데 결국 대선 출마를 하지 않았던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왜 출마하지 않으셨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의외로 솔직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막상 출마를 결심하려고 보니 자기 마음속에 진정으로 와닿는, 손에 잡힐 듯한 확실한 미래 비전이 없더란다. 준비가 부족하기도 했고 또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자기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천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출마를 포기했다고. 이후 그분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달리 보게 되었다. 자기 비전 없이 추대나 옹립의 방식으로 대권을 넘보는 이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나 싶다.

사실 우리들 행동의 근본 동기는 감성영역에서 비롯된다. 논리와 추상적 개념, 학습된 지식은 감성적 판단에 의한 행동을 사후합리화하는 수단이다. 흔히들 말하는 권력욕 혹은 권력의지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사적인 감성적 동기가 그 출발점이다. 그러니 누군가 국가를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런 권력의지를 갖게 된 가슴 절절한 사연과 감성적 심연의 동기에 대해 묻고 또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최소한 7가지 감정들-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경험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인간의 본성적 욕구와 감정에 높고 낮음이란 없다. 그러니 대선 주자들도 언제, 왜, 울고, 웃고, 분노하고, 절망하며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인지, 그리고 대통령이 돼서 이루려는 개인으로서의 꿈은 무엇인지 진솔하게 답해야 할 의무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미사여구를 동원해 포장된 발언들을 할 테니 결국은 그들의 말이 아니라 그동안의 삶의 궤적과 견주어 엄밀히 판단해야 한다.

특히 대선 주자들은 손에 잡힐 듯 확실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미 다들 느끼고 있듯이, 한국사회에 저성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지 오래다. 반전이나 패자부활의 기회도 닫혀버린 그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00년간 식민경험, 분단과 전쟁, 빈곤과 기아, 군부독재와 고도성장, 민주화, 외환-금융위기, 그리고 다시 20여년 동안의 경제자유화를 거치면서 영광과 성공의 역사 못지않게 아물지 못한 상처와 생채기, 응어리들이 뒤범벅이 되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이룬다. 세월의 풍상을 견뎌온 중년의 그들과 닮았다. 젊은 시절의 활력을 되찾고 싶지만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그렇다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다 죽음을 맞기는 싫은 그런 중년의 위기 말이다.

다들 머릿속으로는 잘 안다. 결국 인생이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것을. 하지만 과연 이 삶의 길이 더 행복한 길로 나아가는 방향인지 자문해 보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많지 않다. 중년의 위기는 바로 이 방향성 상실의 문제다. 한국사회도 바로 이 방향성의 위기에 처해 있지 않나 싶다. 많은 이들이 정말로 절망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핵심 이유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올 것 같지 않은 그 방향성 상실의 문제다. 물론 소득 및 자산양극화, 불평등 및 불공정 심화 등 여러 원인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그 기저에 깔린 핵심은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대선 주자들은 바로 이 방향성 상실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미래 비전으로 답해야 한다. 비전은 모방이 쉽지 않다. 없다면, 나서지 않는 게 낫다.

우리들 대부분은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마는 것이 생물 진화의 역사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실상은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더라도 개인적·사회제도적 관성과 타성을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화에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비전은 변화에 따른 고통 분담에 대한 현실적 해법과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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