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이 야당의 대표는 아니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한 양당 대표 합의가 번복되어 후폭풍이 거세다. 4차 대유행과 델타 변이까지 확산하는 상황에서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가볍게 합의하고 번복하는 행태가 팬데믹에 지친 국민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지구당 제도 부활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수정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에 대한 합의도 중요한 문제다. 재난지원금이 코앞에 닥친 문제라면 정당 제도와 선거 제도의 개정은 장기적으로 정치 구조와 민주주의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위성 정당 문제를 해결해 선거 제도의 공정을 기한다는 것은 좋은 취지다. 원외 후보들에게 불리한 선거 경쟁을 바로잡겠는다는 것도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지구당 조직과 선거법이 가진 문제는 더 근본적인 데 있다. 과거 지구당 조직은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된 정당 구조였으며, 다수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선거법은 의석률의 득표율 반영을 왜곡한다. 두 제도는 새로운 정치인과 정당의 등장을 막아 기성 정치 세력들에 유리하게 작용해 정치 발전을 저해한다.

더 긴요한 일은 지역 정당 설립을 허용해 지역 정치를 활성화하고 비례대표제를 확대해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의회에 올바로 반영하는 것이다. 현행 정당법은 제3조에서 정당 구성 요건에 대해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규정하고, 제17조에서 ‘다섯 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제도를 유지한 채 지구당을 부활시킨다면, 정당 활동과 지역 정치는 중앙 예속을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위성 정당을 불허한다고 해도 20%가 채 되지 않는 비례 의석으로 득표율과 의석률의 왜곡을 해결할 수는 없다.

지역의 중앙 예속은 왜곡된 지역주의를 심화하는 요인의 하나다. 지역 주민이 지역 이익을 주장하는 것 자체를 ‘망국병’으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망국병’은 왜곡된 지역주의일 뿐이다. 정치적으로 소외된 지역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한다는 의미의 지역주의는 정치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중앙에 예속된 우리나라에서 수도권을 제외하면 모든 지역이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지역 정치를 주민 스스로 수행해 나가고 이것이 전국 정치에 제대로 반영될 때, 왜곡된 지역주의는 해결될 수 있다. 그 첫걸음이 지역 정치 활동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지역 정당의 활성화다.

사실 비례대표제 확대 논의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다수대표제가 양대 정당에 유리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양대 정당의 지지율이 30~40%에 머물러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는 정당이 없는 경우, 양대 정당은 번갈아 가며 과반 의석을 확보해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 게다가 합의 정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승자독식 정치와 여야 간 극한 대립의 행태가 이어져 왔다. 비례대표제의 확대 혹은 전면 실시로 득표율과 의석률의 비례성을 높이고 소수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의회에 반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이 양대 정당의 합의로 가능할까. 짜인 판에서 강자로 등장한 두 행위자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새 판을 짤 수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현행 정당 체제와 선거 제도에서 양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양대 행위자다. 이들만이 모여 규칙을 정하는 것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강자들 간 담합에서 약자의 처지까지 헤아려 시혜를 베푸는 것을 기대해야 하는가. 기득권을 가진 기성 정당들이 신생 정당의 의회 진입과 위상 강화를 가로막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담합하는 정당 체제를 카르텔 정당 체제라고 한다. 이번 양당 대표 회담에도 카르텔 정당 체제의 실루엣이 비친다.

지역 정당의 등장과 비례대표제의 확대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이롭지 않을 것이다. 지역 정당의 활성화는 중앙과 거대 정당에 집중된 기득권을 약화시키는 것이고, 비례대표제 확대도 양대 정당에 집중된 기득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대 정당이 만나는 자리에서 제3정당들에 유리한 방향의 개혁이 도출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경기의 규칙을 정할 때는 소수자들의 참여가 필수다. 정치판의 핵심 규칙인 정당법과 선거법의 개정은 제3정당들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제1야당이 야당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양대 정당만의 합의를 협치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전인수 격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협치는 소수자를 포함하는 합의 민주주의로 운영될 때 가능하다. 우리나라 정치가 다수결 민주주의에서 합의 민주주의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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