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귀환’, 그 이후가 중요하다

조운찬 논설위원

올해 광복절은 ‘조용히’ 지나갔다. 70주년도, 75주년도 아닌 76주년이어서였을까. 아니면 팬데믹의 영향이었을까. ‘광복절 특사’도 없었고, 떠들썩한 기념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옛 서울역사에서 열린 정부의 광복절 기념식은 역대 가장 작은 규모로 치러졌다.

조운찬 논설위원

조운찬 논설위원

눈에 띈 것은 홍범도 장군의 귀환이었다. 광복절 저녁, 문재인 대통령은 몸소 서울공항에 나가 카자흐스탄에서 특별기로 수송된 장군의 유해를 맞이했다. 이튿날에는 홍 장군의 고국 귀환에 적극 협조한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방한했다. 양국 대통령의 행보에서 장군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예우의 뜻을 읽을 수 있다. ‘장군의 귀환’은 해방을 맞아 귀국한 백범 김구가 일본에서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유골을 모셔온 일에 비견될 만하다.

홍범도는 ‘봉오동·청산리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투쟁에서 1920년대 독립전쟁에 이를 정도로 장구하다. 투쟁 기간이나 치열함에서 그를 따를 자는 없다. 청산리대첩 이후 소련으로 건너간 홍범도는 한인들과 농업조합을 조직하고 농업에 종사하다 1937년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그는 고려인 사회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가 죽자 동포들은 연극·소설로 그를 기리는 한편 홍범도 묘역·거리를 조성하며 고려인의 상징으로 떠받들었다.

홍범도가 고려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유해 봉환이 최선의 선택이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또 현지에서 지속적으로 홍범도 기념사업을 벌여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귀환으로 받을 한인 동포들의 상실감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홍범도가 독립군의 표상이고 후손도 유해 봉환을 간절히 원했던 만큼, 이제는 고국에서 장군의 고귀한 뜻을 살리는 게 필요하다. ‘장군의 귀환’은 홍범도 한 사람이 온 게 아니다. 그와 함께 만주의 수많은 독립군들이 함께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80년대까지 이념 대립과 자료 부족 등으로 홍범도는 주목받지 못했다. 청산리대첩은 김좌진·이범석의 승리로만 알려졌다. 교과서에는 홍범도 장군을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싣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한·러, 한·중 수교가 체결되고 자료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홍범도의 독립전쟁 활약상이 드러났다. 그러나 청산리전쟁에서의 홍범도의 활동, 대한독립군의 성립과 조직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홍범도의 전체 항일투쟁, 나아가 항일유격대나 동북항일연군 등 만주 독립전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재평가 작업이 필요하다.

정부는 어제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1962년 받은 대통령장(2등급)이 저평가됐다는 판단에서다. 홍범도만은 아닐 것이다. 그간 임시정부나 광복군 계열의 독립운동은 상향평가된 반면 만주 무장투쟁이나 좌파계 독립인사들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독립유공자 포상은 독립지사 개인을 선양한다는 차원을 넘어 독립운동사를 재정립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만큼 국가보훈처는 부당하게 저평가된 인물들을 조사해 재심의할 필요가 있다.

홍범도는 안중근·신채호 등과 함께 남북이 모두 추앙하는 몇 안 되는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이다. 북한은 홍범도가 평양 출신이고 함경도에서 의병투쟁을 벌였다는 연고를 내세워 북한으로 유해 봉환을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 화해를 위해 장기적으로 홍범도 유해의 북한 봉환도 고려해볼 일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발도 떼지 못한 안중근 유해 발굴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서민 출신인 홍범도는 근대식 무관학교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포수부대·의병투쟁을 통해 실전 감각을 익혔을 뿐 아니라 유격전에도 뛰어난 군인이었다. 특히 그는 의병부대를 독립군으로 발전시키며 항일투쟁이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했다. 2015년 해군이 ‘홍범도함’을 진수하고, 2018년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등 독립운동 영웅 5명의 흉상을 세우는 등 최근 독립군에서 국군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의병-독립군-광복군-대한민국 군대로 이어지는 한국군의 역사가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홍범도의 유해 봉환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는 귀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장군의 귀환’을 현충원 안장, 훈장 수여 등 개인 추모 의식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100년 전 조국 독립에 전 생애를 걸었던 홍범도 장군의 고귀한 항일정신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그의 귀환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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