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혐 손가락 논쟁을 넘어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남성혐오 논란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 숨어 있는 남혐 손가락을 적발해내는 것은 ‘놀이’ 수준을 뛰어넘어 연일 언론지상에 오르내릴 정도의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급기야 한 금메달리스트 여성이 남성혐오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까지 시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혐오와 차별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자, 소수종교신자 등 소수자 집단의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생긴 개념이다. 그런데 소수자를 보호하는 혐오·차별 관련 법제에서는 소수자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으며, 혐오 표현이나 차별을 개념 정의하기 위해 ‘차별금지사유’ 또는 ‘정체성 요소’를 사용한다. 즉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자, 소수종교신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금지한다고 규정하지 않고 성별, 장애, 성적지향, 출신민족, 종교를 이유로 한 혐오와 차별을 금지한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 헌법에는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성별, 혼인, 가족 안에서의 지위,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렇게 차별받을 수 있는 대상 대신 정체성 요소를 활용하여 혐오나 차별을 정의하는 것은 정체성 요소에서 기인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포착해내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면 여성 차별뿐만 아니라 양성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트랜스젠더 차별 문제를 포함할 수 있고, 출신민족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면 특정한 민족 출신이라고 오인한 경우도 차별로 간주할 수 있다. 실제로 혐오범죄법의 기원은 흑인 등 기타 소수인종에 대한 인종적 혐오범죄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백인 대상 혐오범죄도 배제하지 않는다. 성희롱법은 여성에 대한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성희롱 법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남성에 대한 성희롱도 인정된다.

남성혐오와 여성혐오 동일시 땐
문제 제기의 취지 자체 무색해져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누구 권리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공론장에서 논쟁을 붙여야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혐오·차별 법제가 정체성 요소로 구분되는 집단들을 동등한 처지에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흑인과 백인이 똑같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특정한 시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시적인 문제일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학교에서 남성이 성희롱을 당할 수 있지만, 그 남성이 그 특정 학교를 떠나는 순간 일상적 성희롱의 위협은 현저하게 소실된다. 반면 어떤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한 여성은 퇴근 후에나 퇴직을 해도 일상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희롱을 당할 위험에 노출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이주자와 내국인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남성혐오나 여성혐오나 똑같이 문제라고 하거나, 내국인이 이주자에 비해 역차별을 받는다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물타기하는 것은 애초에 우리가 왜 혐오와 차별 문제를 제기했는지, 그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 뿐이다.

여성 인권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도 성희롱, 차별, 혐오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며, 한국도 마찬가지다.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는 수많은 이론적·실증적 근거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남성 차별이 있다면 그것 또한 사회적·법적 규제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성별이라는 표지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포착하는 것은 중요하며,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작업 또한 주의 깊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성찰적으로 진행된다면, 성별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대부분 부당한 것임을 드러내는 급진적인 해체의 과정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남혐 손가락 기호를 찾아다니는 것에서 그러한 긍정적인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 공공기관과 기업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으니 사과한다는 식의 어설픈 타협을 하면 안 된다. 언론은 더 이상 화젯거리로 중계방송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정치인은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릴 일이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공론장에서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누구의 권리를 어떻게 침해하고 있는지 공론장에서 논쟁을 붙여야 한다. 뻔한 대안이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