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여자들

오수경 자유기고가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이라는 책이 있다. 시리아 청년들이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횡포와 끊이지 않는 전쟁의 공포에 저항하기 위해 시리아 중심 도시 다라야 지하에 만든 비밀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다. 전쟁과 도서관이라니. 이 모순적 조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아흐마드와 동료들은 지하 피난처에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책을 만들고, 투쟁하며 지난한 공포를 견딘다. 그 견딤이 쉽지는 않았다. 다만 “이 부조리를 어떻게 견디며 살까? 배고픔은 어떻게 떨쳐낼까? 불안과 피로에 어떻게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든 폭력에 어떻게 저항할까?” 고민하며 “저마다 침몰하지 않으려고 각자 생존 법칙”을 찾아낸 것이다. 그들에게는 지하 도서관이 피난처이고, 책과 친구가 생명줄이었던 것이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아프가니스탄 소식에 몇 년 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비록 시리아 이야기지만 그렇게라도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 소식을 내 앞으로 끌어당기고 싶었다. 아프간이 탈레반에 함락된 후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고, ‘아직’ 난민조차 되지 못한 이들이 몰린 카불 공항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에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다. 공포에 갇혀 숨죽이고 있는 아프간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피난처이고 생명줄일 수 있을까?

그곳에서 한국 정부 활동을 지원했던 현지인 직원과 가족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충북 진천에 마련된 숙소에서 지내다 한국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미라클’로 명명된 이번 수송 작전으로 위험에 처한 이들이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그곳을 탈출하여 오게 된 것이 다행이다. 이를 위해 외교당국은 최선을 다했고, 법무부는 인천공항에 입국한 아이들에게 인형을 선물로 주며 맞춤형 환대를 했다. 이들이 머물게 될 인재개발원 인근 주민들은 다양한 언어로 쓴 환영 현수막을 붙였다. 이번 수송 대상에는 ‘특별기여자’라는 단서가 붙었고, 여전히 난민에 관한 비우호적인 정서가 있지만 난민에 관한 대중적 시각도 점점 변화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피난처와 생명줄이 될 수 있을까?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난민 신청자를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우리 인식도 아직 부족하다. 2018년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상륙했을 당시 등장했던 ‘순수한 난민’이라는 프레임에서 우리는 얼마나 진보했을까? 그렇게 증명할 수 없는 자격을 앞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수송 작전의 명분인 ‘특별기여자’라는 조건이 또 다른 배제의 문턱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특별기여자’가 아닌 이들도 무사히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난민을 향한 배제의 문턱을 높이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사회적 환대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도모해야 하는 과제 앞에 놓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입국자 중 61%가 미성년자이고 6세 미만은 29%다. 선물 받은 인형을 꼭 쥔 손과 카메라를 응시하는 맑은 얼굴을 사진으로 보며 인사를 건넨다. 이들이 만나게 될 첫 ‘세계’는 어떤 얼굴일까? 부디 우리 사회에 머무는 동안 차별적 시선과 혐오에 갇히지 않기를, ‘다라야의 지하 도서관’처럼 무수한 지식과 상상력과 우정을 만날 수 있기를, 그런 환대 속에서 자라 자신의 고향을 재건할 힘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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