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역설, 혐오를 없애려면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차별금지·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10만 동의 청원이 성사된 지 두 달이 넘었다. 청원 후 이상민·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평등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해 6월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차별금지법안, 국가인권위의 평등법 시안까지 국회에 제출된 차별금지·평등법안은 4건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8월13일부터 전국 16개 지역에서 차별금지·평등법의 쟁점과 의미를 짚어보고, 일상의 다양한 차별 경험을 나누며 지금 당장 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를 확인하는 시민공청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차별금지·평등법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많다. 시민공청회는 왜곡된 정보 때문에 오해와 우려를 갖게 된 시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오해를 불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공청회에서 어떤 시민은 차별금지·평등법이 윤리와 도덕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우려했다. 윤리와 도덕은 고정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조선시대엔 ‘남녀칠세부동석’이 윤리와 도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했던 악습이라 평가한다. 과거 미국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결혼을 금지했다. 역시 윤리와 도덕을 해치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윤리와 도덕은 절대적이거나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지역, 공동체, 시대에 따라 다르고 변화하며 끊임없이 성찰되고 갱신하는 것이다.

한편 윤리와 도덕에는 옳고 그름, 판단이 들어간다. 여기서 누구의 옳고 그름인지, 누가 판단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종종 이를 망각한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편견을 공동체의 윤리와 도덕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한 심리학과 교수는 공감의 역설로 혐오를 설명한다. 질병, 재난 등 위협들로 생존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집단중심성이 강해지는데 자기 집단에는 편애로, 다른 집단에는 혐오와 차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감은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감정인데 보통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과는 공감을 경험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기 집단에게만 한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혐오와 차별은 공감의 오작동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공감만으로는 혐오와 차별을 없앨 수 없고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한다. 한 재단에서 진행한 온라인 강연을 들으며 많이 공감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후위기,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등 위협은 도처에 있다. 공동체의 안전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절대 용납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 시급하다. 평등의 약속, 차별금지·평등법 제정이 그 첫걸음이다. 국회의 머뭇거림은 단지 시간을 지연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묵인, 방조하는 것이자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향한 길을 막는 것이다. 국회는 한시라도 빨리 차별금지·평등법을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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