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을 바라는 독자께

이주영 정책사회부장

안녕하세요 독자님. 지난달 어느 아침 신문사로 전화하셨을 때 통화했던 기자입니다. 경향신문을 수십년간 구독 중인 70대 독자라 하셨죠. 당시 통화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경향신문 보도에 대해 의견을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언론의 오보에 따른 피해가 막심하다. 잘못된 보도가 한 번 퍼지면 사회적으로 매장되다시피 하는데 정정보도는 제대로 안 되지 않나. 언론중재법 개정에 찬성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데 경향신문에 반대 의견만 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다는 말로 통화를 마치셨지요.

이주영 정책사회부장

이주영 정책사회부장

대화를 길게 하진 못했지만 언론중재법 논란을 지켜보는 내내 독자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돌더군요. 언론에 대한 불신·혐오, 그래서 나오는 언론개혁의 당위성, 이를 동력으로 한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 ‘언론자유 침해’라는 언론단체들의 비판, 이런 비판을 되레 비판하는 여론 추이를 지켜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돌이켜보면 개혁 대상이 되고도 남지요. ‘아니면 말고’식 보도로 생사람 잡는 경우가 한두 건이 아니었죠. 특종, 단독 경쟁에 눈이 멀어 인권침해를 서슴지 않고 최소한의 취재윤리마저 도외시한 보도도 심심치 않습니다. 진영논리에 매몰된 보도는 일일이 셀 수도 없죠. 찬반 여론이 팽팽한 이슈일수록 언론이 입체적 조명을 통해 생산적으로 논의를 끌어내야 하지만, 오히려 양극단으로 갈라져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경우가 허다하죠.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이런 고질병은 더 악화됐고요. 겉으로는 중립적인 척하지만 누가 봐도 특정 정치인이나 세력을 옹호 또는 반대하는 기사들을 노골적으로 쏟아내죠. 팩트 짜깁기를 통한 기사 왜곡, 조회 수 장사에 매몰된 낚시성 기사, 심지어 기사와는 상관없이 특정인을 연상케 하는 삽화까지 등장하는 기사를 보노라면 같은 언론계 종사자로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사실 왜곡과 편파 보도에 앞장서온 일부 언론들이 언론자유 수호의 투사인 양 나서는 모습도 낯뜨겁죠. 언론에 대한 불신·혐오 정서를 이해 못할 바 아닙니다. 이러한 비판에서 경향신문 역시 자유롭지 않다고 봅니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한 피해자 구제를 실효성 있게 함으로써 언론 보도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독자님 지적에 100%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개혁의 방향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아요. 민주당 개정안은 피해자 구제를 넘어 언론 전체를 가짜뉴스 생산자로 매도하고, 결과적으로 언론 보도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정안의 핵심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내용이에요. 여러 전문가가 지적하듯 이 조항은 모호함투성이입니다.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 허위·조작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등이 고의 또는 중과실에 해당한다고 개정안은 명시해놨어요. 그런데 기사에 고의성이 있는지, 보복 의도가 있는지, 어디까지를 회복 불능한 손해로 볼지 등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게 없어요. 일단 법원 판단에 맡겨 시비를 가리겠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언론의 의혹 제기나 비판 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죠.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진실한 보도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특정 세력이 싫어하는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사회적 공론의 장을 닫아버려, 결과적으로 권력 감시·견제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이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입시비리 사건처럼 추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난 사건들이 언론의 초기 의혹 보도 단계에서 아예 묻혀버릴 수 있는 거죠.

언론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포털 등에서 기사를 볼 수 없도록 하는 기사 열람차단청구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정안은 ‘제목이나 내용이 진실하지 않을 경우’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 기사가 노출되지 않게 청구할 수 있도록 했어요. 이 역시 요건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죠. 진실하지 않다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의 비진실성을 말하는 걸까요. 사생활에서 핵심 영역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이는 피해자 구제라는 미명하에 언론 보도를 사전 검열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언론중재법과 언론개혁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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