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뉴딜과 한국 경제의 길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930년대 대공황의 와중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시행했다. 정부지출 확대와 일자리 창출 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이 목적이었지만 동시에 노동권과 사회보장 강화, 반독점 규제와 같은 진보적 프로그램이 추진되었다. 뉴딜이 경기부양에 큰 효과가 있었는지는 논쟁의 대상이지만 경제 사상의 흐름에서 분수령을 만들었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뉴딜은 경제 사상의 주류가 정부를 최소화하고 시장을 최대화해야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뉴딜 자유주의로 이동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980년대부터 득세하여 신자유주의라고 불리게 된 고전적 자유주의로의 세찬 복귀는 21세기에 들어와 힘을 잃었다. 그러나 어떤 사조가 이를 대체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촉발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세계가 진보적 자유주의로 회귀할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주요 국가의 사회 분위기는 반대 방향으로 튀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운동, 미국의 트럼프,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프랑스의 국민연합 등 새로운 우파 세력의 득세는 세계가 다원주의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적 질서에서 이탈하여 포퓰리스트가 지배하는 인종적 민족주의의 혼돈으로 퇴행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자아냈다. 동시에 중국과 일본에서는 부국강병형 민족주의가 부활하여 이 흐름에 가세했다.

최근 이러한 분위기에 큰 변화가 생겼다. 팬데믹에 대한 과감한 대응과 미국의 민주당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일련의 정책은 경제 정책의 중심을 좌측으로 성큼 이동시켰다. 선진국 정부들은 GDP의 16%에 이르는 막대한 재정을 팬데믹 대응에 퍼부었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에서 GDP 대비 정부부채 비중이 마지노선이라던 100%를 초과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또한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은 세계금융위기 당시에는 여러 해에 걸쳐 분산 매입했던 양의 정부채권을 단 1년에 매입하면서 거대한 양의 화폐를 시장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유럽과 미국의 중앙은행이 보유하는 정부채권은 총발행액의 20%를 크게 초과하여 중앙은행이 정부부채를 사실상 화폐화하는 단계에 다가갔다. 또 하나의 거시정책 금기가 깨졌다.

이에 더해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는 장기간에 걸친 대형 재정지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케인지언 수요 견인 정책과 함께 정부가 인프라 건설과 신산업 투자에 적극적 역할을 함으로써 민간 투자를 선도하겠다는 정부 주도 공급사이드 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동시에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의 산업에서 보조금에 기반한 강한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무역 질서를 유지했던 WTO 체제와 크게 충돌하는 정책이다. 탄소중립정책 또한 정부가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시장을 규제하고 민간 투자 유인을 적극적으로 형성하겠다는 강력한 형태의 산업정책이다. 그리고 공약했던 최저임금 상승, 노동조합 강화 법안은 상원에서 막혀 있지만 새로운 무역 질서 형성을 통해 인권과 노동권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지속된다면 루스벨트의 뉴딜에 못지않은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또한 신흥국은 선진국과 다르게 움직일 때 모난 돌이 되어 정을 맞기 쉬운 국제 정치와 금융의 현실에서 한국 경제가 정부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금융 시장에서 신흥국과 선진국 사이의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 한국 경제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인구당 확진자 수가 우리의 수십 배에 달했고 성장률 하락폭이 우리의 4배에서 6배나 되었던 미국과 유럽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이 작년에 기록한 GDP 대비 4~5% 재정수지 적자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냉철한 판단과 거리가 멀다. 선진국 중앙은행이 자산 가격과 부채가 크게 부풀어오르는 것을 방치하고 인플레이션과 고용 목표에 집중하는 것도 그대로 따라할 수 없다. 선진국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정상화 스케줄과 여파에 불확실성이 가득하고 미·중 무역갈등이 언제 다시 금융시장을 휘저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탄소중립의 앞길도 험난하다. 서비스 중심의 선진국에서는 일부 산업이지만 한국에서는 주력 산업의 대부분이 큰 조정을 해야 한다. 더구나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같은 시점에 종착역에 도착할 것이 요구되는 탄소중립은 재정과 성장에 선진국에서보다 큰 압박을 가할 것이다. 변화의 바람을 현명하게 타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Today`s HOT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