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보장 넘어 양질의 삶 보장으로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19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의 주관으로 ‘소득보장체계 혁신방안 정책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세 명의 전문가가 소득보장의 세 가지 대안(기본소득, 부의 소득세, 최저소득보장제)에 대해 각각 발표하고 다섯 명이 토론을 하였다. 근래 보기 드문 우수한 토론회였고 우리나라의 소득보장체계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질 높은 대안모색이 이루어졌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그간 기본소득에 대한 정치적 공방은 많았지만 논의의 건설적인 진전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일차적 이유는 이재명 지사 측에 있다. 비판의 표적을 끊임없이 움직여서 무엇이 정책의 핵심인지 애매하게 만들어 버리고 논쟁을 희화화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획일적 현금지급은 차등적 소득보장에 비해 소득재분배 효과가 작아 가성비가 낮다고 비판하면 기본소득은 소비를 진작시켜 성장을 촉진하는 분배적 성장정책(오리너구리)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모르나 전 세계 어느 기본소득론자도 소비진작을 위해 기본소득을 옹호하지 않는다.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의 한계소비성향이 더 크기 때문에 소비효과도 획일지급보다 차등지급이 더 크다고 비판하면 조세저항을 완화하려면 부자에게도 나눠줘야 한다고 말을 바꾼다. 몇천만원이나 되는 세금을 내는 부자에게 10만원 돌려주면 조삼모사 아니냐고 하면 보편복지가 선별복지보다 증세에 유리하다는 주장을 인용한다. 보편복지는 시도 때도 없이 획일적으로 푼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위험과 필요에 비례하여 인간다운 삶을 충분한 액수로 보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 푼돈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뭄의 단비라고 주장하면서 상위 15%만을 위한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3700억원의 경기도예산을 쓰기로 결정한다. 누가 보아도 200조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갈 정책에 대한 진지한 토론방식이 아니다.

지난 19일의 토론회에서는 학자들 간의 토론답게 진지한 비판과 답변이 오고 갔다. 많은 시사점을 주는 토론이었고 소득보장에 대한 바람직한 해법을 모색하는 귀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첫째,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질 좋은 삶의 정의로운 보장이고 소득보장은 질 좋은 삶의 보장을 위한 하나의 작은 수단에 불과하다. 질 좋은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소득보장뿐 아니라 교육·의료·돌봄·치안과 같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보장, 좋은 일자리에 대한 충분한 수준의 보장, 지역 간 균형발전의 보장, 열린 계층사다리의 보장, 차별없는 세상의 보장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어진 예산제약하에 소득보장의 확대가 이러한 비현금성 복지서비스를 얼마나 위축시키게 될지,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둘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둘째, 기본소득과 부의 소득세의 본질적 차이는 거의 없다. 소득세를 재원으로 할 경우 양자는 동일하다. 비례세로 할지 누진세로 할지도 본질적 차이가 아니다. 물론 재분배효과에서는 후자가 더 크다. 양자 모두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철학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셋째, 불황기와 호황기의 욕구와 필요는 다르다. 따라서 소득보장의 액수와 형태도 경기변동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100만원은 호황기에는 너무 많은 액수이고 불황기에는 너무 적은 액수이다. 경기변동과 무관하게 똑같은 액수를 지급하는 소득보장정책은 정의롭지도 않고 소비평탄화를 이루지 못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현실에서 사각지대가 생기는 이유는 필요와 욕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사각지대를 과도하게 없애면 중복지급이나 과잉지급이라는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한다.

다섯째, 공유부에 대한 평등한 권리가 현세대 구성원들만에 대한 획일지급을 함축할 필요는 없다. 설악산은 우리의 공유부이지만 그렇다고 산으로부터의 혜택을 똑같이 쪼개어서 획일적으로 나눠줄 필요는 없다. 산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필요할 때 산을 즐기면 그만이다. 공유부는 현세대만의 자산도 아니다. 미래세대의 자산이기도 하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자산이기도 하다.

여섯째, 소득보장이 근로시간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소득보장액의 크기와 지급방식에 의존한다. 뺨을 맞았을 때 아픈지 안 아픈지는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와 얼마나 자주 맞았는지에 의존하는 것처럼. 물론 경제학자의 관심은 사람의 행복증진(삶의 질)에 있고 근로시간 변화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의 행복증진에 갖는 효과를 통해서뿐이다. 경제학자에게는 근로시간 페티시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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