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쏘아올린 희망, 통일국민협약안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통일국민협약’이란 유일하게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사회협약의 명칭일 것이다. 지난 6월 말 이 낯선 이름의 협약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7월 초 델타 변이의 확산으로 이 소식은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한 것 같다. 그냥 덮이기엔 너무 소중한 의미가 있어 남북관계의 중요한 역사들이 담긴 9월에 다시 들춰내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각계각층 6000여명의 시민들은 지난 4년간 통일국민협약에 관한 사회적 대화를 위해 총 60여회에 걸친 장을 열었다. 통일·대북정책 분야에서 최초로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 보수, 중도, 진보, 종교계 등을 망라한 초정파적 시민기구인 ‘통일비전시민회의’가 2019년 4월 출범했다. 시민회의 주도하에 우리 사회 일반시민을 대변할 수 있도록 성별, 연령, 지역, 이념적 성향이 고려돼 시민참여단이 선정됐다. 사회적 대화와 ‘통일국민협약안’ 작성 전 과정에 있어 시민참여단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었고 ‘시민주도, 정부지원’이란 원칙이 철저히 지켜졌다.

6월26일 비로소 채택된 통일국민협약안에는 ‘군사적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국제사회와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한반도’까지 총 16개의, 시민들이 바라는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상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이를 이루기 위한 실현 과정과 방법으로 국민 참여와 합의 형성, 대북 통일정책 일관성 확보 등 총 8개로 구분된 세부 분야별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통일국민협약안은 통일·대북정책 분야 사회적 협약의 실험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협약은 노동과 경제분야에서 노사정 간 합의를 내용으로 한다. 통일국민협약을 통해 사회협약의 범위가 통일과 민족문제로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손자뻘 되는 청년과 할아버지 그리고 딸 같은 여대생과 어머니 세대가 실생활과 거리가 먼 통일문제에 대해 2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숙의토론을 거쳐 합의안을 도출한 것이다. 우리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세대갈등과 이념갈등을 기억해볼 때, 시민참여단이 도출해 낸 공동의 결과물은 결코 가볍게 평가될 사안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국민협약안은 지금까지의 통일·대북정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 시도된 ‘통일항아리’나 ‘통일 헌장’이 관 주도의 공론화 정책이라고 한다면, 통일국민협약은 그야말로 시민 주도의 공론화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시민사회가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통일국민협약안 채택 이후가 더 중요하다. 지금부터는 통일국민협약안에서 ‘안’을 떼어낸 ‘통일국민협약’을 만드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일반시민을 대변하는 시민참여단이 직접 만든 협약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글자 사이, 문단 사이에 배어 있는 시민들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진정성, 열정과 관심을 온전히 느낀다면 국회 차원의 할 일은 분명해질 것이다. 정부 역시 시민들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의식 성장과 민주시민으로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장으로서 사회적 대화를 제도화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학계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주로 사회학의 범주로 간주되던 ‘사회협약’과 ‘사회적 대화’가 북한학계로 불쑥 들어왔다. 이론은 존재하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체계이다. 통일·대북정책 분야에서 새로이 등장한 ‘통일국민협약안’과 ‘사회적 대화’라는 현상에 대해 학문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협약안을 도출하게 만든 합의정신을 규명하고 협약안에 담긴 기본원리를 철학적으로 정립해야 할 것이다.

시민참여단으로 참여했던 한 분의 수기가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는다. “처음에는 ‘나와는 전혀 다른 한반도와 통일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가운데서도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며 분임토의와 토론을 거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아하, 저렇게도 한반도와 통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겠구나!’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와 우리 분임원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한반도의 미래상과 통일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민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를 이해하며 싹틔운 희망의 새순을 이제는 정부, 국회, 학계, 시민단체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바람직한 한반도의 모습으로 성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평화와 통일은 우리 앞에 운명처럼 일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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