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거부’ 해법은 결국 설득이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무엇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옳은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라고 질문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시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백신을 맞힐 수 있을지에 관한 문제도 그중 하나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미국 같은 나라에 비할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백신 거부 주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다수 국민 대상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지난 4월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3%가 백신 접종 의향이 없다고 답했단다. 직종별, 정치성향별, 지역별, 백신 종류별로 쪼개 들어가면 접종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채 절반이 되지 않는 집단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이니 백신 접종 거부 문제를 단순히 소수의 문제라며 외면하거나 동의하든 않든 강제로 접종시키면 된다고 얘기할 수가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수 성시경씨의 발언도 이 맥락에 있다. 지난 1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며 “말 잘 듣는 국민이 되는 건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 같다”라고 얘기한 것이다. 일부 언론들은 이 발언을 부각하며 성시경씨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소신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 성씨는 다음의 말도 했다. “왜 말을 안 듣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다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 계속 이야기하고 이해시켜서 확신을 주는 게 중요하다.”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영상에서 그는 상당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발언했다.

성시경씨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고 어떤 의도가 있어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여기서 논할 바가 아니다. 백신 접종률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일이 성씨를 ‘재판’하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다소 부정확했지만 조심스러웠던 그의 발언은 참고할 만하다. 그는 이 문제를 강제 접종으로 풀 수 없고, ‘확률’이라는 과학적 사실로 설득할 수도 없으며, 백신 거부자들을 비난할 문제도 아니라는 점을 얘기했다. 적어도 백신 접종 문제에 관한 한 이러한 접근법은 타당해 보인다.

접종 거부자들은 반지성주의자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진단이나 ‘조롱’의 언어이지 문제 해결의 언어는 못 된다. 그들을 반지성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건 쉽지만, 그들이 다시 지성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들이 소수라면 ‘낙후’시키는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23%는 소수가 아닐뿐더러, 전염병과의 전쟁은 이들을 낙후시킨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누구는 맞고 누구는 안 맞는 ‘취향존중’의 문제도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맞아서 집단면역에 도달하지 않는 한 계속 우리를 괴롭힐 공동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방법은 지난한 설득일 수밖에 없다.

백신 접종 거부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어떤 문제는 조롱이나 인민재판, 낙후, 취향존중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조롱으로 누군가의 기분을 망치고, 재판으로 누군가의 잘못을 공인하고, 낙후로 누군가를 고립시키고, 취향존중으로 누군가와 갈등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단지 그뿐이며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 이 문제만이 아니라 많은 사회적 문제들에서 그렇다. 이해 안 되고 답답해도 ‘나의 기분’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우선순위로 두어야만 간신히 풀리는 문제들이 수두룩하다.

어떤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는 것은 과학의 영역이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사실이 명백한데 무슨 설득까지 해야 하나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이런 시대가 되어버린 것을. 그렇다고 시대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이 시대도 바꿔나가야겠지만, 어쨌거나 지금 당장의 문제도 해결해야 하니까.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