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감축론, 왜 특권 수호로 보일까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홍준표 의원이 국회의원 감축과 양원제 도입, 비례대표 폐지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정확히 말하면 ‘상원 50명, 하원 150명, 비례대표 폐지’다. 상원의 기능을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자치 시대가 도래하는 시점에서 양원제 도입은 반길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비례대표제 폐지와 국회의원 정원 축소는 시대를 거스르는 공약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특히 국회의원 감축은 잘못된 인식과 의도에서 비롯된다. 기구나 단체의 인원을 축소하는 것은 대개 잉여 인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잉여 인원 발생은 재정이나 비용 혹은 업무와 관련된다. 재정이 부족해 규모를 줄이는 경우가 아니면, 비용 낭비가 발생하거나 업무 효율성이 증가해 필요 인원이 줄어드는 경우다. 그밖에 또 다른 사정이 있다면, 처음부터 잉여 인원을 포함하고 있어 무능하고 부패한 구성원이 자리를 차지하는 상황이거나, 자신의 몫을 늘리기 위해 필요 인원까지 줄이려는 지분 다툼의 심화다.

우리나라 국회는 어디에 해당할까? 국회의원 감축론을 ‘정치권의 자기개혁론’이라고 반기기도 하는데, 이것은 국회의 고비용·저효율의 적폐와 국회의원의 과도한 특혜를 근거로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회 운영 예산이 부족한 것도 아니며, 국회의 업무 효율성이 증가해 잉여 인원이 새로 생겨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국회는 처음부터 무능하고 부패했으면서도 과도한 특혜를 누리는 잉여 인원을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이 된다. 무능하고 부패한 국회의원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며, 국회의원의 특혜가 과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처음부터 과다해 잉여 인원을 포함하고 있는가? 국회의원 감축은 2015년에도 논란이 됐는데,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도 감축론에 동의하다가 번복한 바 있다. 국제 비교상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오히려 적은 축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현재 OECD 37개국의 국회의원 한 명당 평균 인구 수는 10만4535명이다. 우리나라는 그중 4위인 17만4000명으로 평균의 두 배에 가깝다. 양원제를 채택한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할 만한 나라 중에서는 우리나라가 1위다. 다시 말해 단원제 국회를 가진 안정적 대의 민주주의 국가들 중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수가 가장 적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면 국회의원 한 사람이 대변해야 하는 국민의 수가 많아지므로 개별 국회의원의 보좌 인력과 비용이 증가하고 권한도 커진다. 반대로 국민 한 사람당 국회의원 수는 줄어들어 국민이 국회의원과 접촉할 기회가 적어진다.

<도덕경> 제17장에서 노자는 가장 좋은 군주는 백성들이 그가 있는 줄만 아는 군주이며, 차선의 군주는 친근한 군주이고, 그다음이 두려운 군주이며, 가장 나쁜 군주가 경멸당하는 군주라고 했다. 고대의 이야기지만 현대 정치인에게도 적용할 만한 내용이다. 권위주의 정치가 사라져 민주주의 공고화 단계에 든 한국에서 두려운 정치인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민주주의가 한층 발전한다면 친근한 정치인이 많아질 것이며, 한 단계 퇴보한다면 경멸당하는 정치인이 많아질 것이다.

득표를 위해 쇼맨십을 보이거나 공약을 남발하는 포퓰러리즘이 득세하는 경우 경멸당하는 정치인이 많아진다. 이러한 정치인들은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며 입에 발린 공약으로 국민을 선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천민 민주주의를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오히려 이들을 경멸한다.

국회의원은 기능인이나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일 뿐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는 잘난 국회의원이 필요하지 않다.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은 평균적 수준의 보통 사람이면 충분하다. 대변인은 의뢰인과 자주 만나 대변에 충실해야 한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의원 개인의 업무와 권한, 비용이 줄어드는 대신 국회의원과 국민이 대면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친근한 국회의원도 많아질 것이다.

특권은 권력의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어 직업화하거나 고유한 이해관계가 형성됨으로써 생겨난다. 국회의원 연임을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다. 혼탁한 이탈리아 정치에서 개혁정책으로 급부상해 집권한 오성운동은 소속 국회의원의 삼선 이상을 금지했다. 국회의원 연임을 제한한다면 대리인인 국회의원이 의뢰인인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국회의원 감축론이 기성 정치인의 자성론이 아니라 엘리트 국회의원의 특권 수호론 내지 강화론으로 비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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