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 이후 미국 정치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나비효과’라 하던가? 아주 사소한 초기 변화가 시간이 지나 의도하지 않은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현상 말이다. 지난 8월 초 아프가니스탄 서남부주의 수도가 탈레반에 함락되고 단 11일 만에 수도 카불도 무너졌다. 이번 아프간 사태를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은 세계질서의 지각판 자체를 뒤흔드는 대지진의 전조 같은 기시감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 그 영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판단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지지율 급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지난 8월 중순의 카불 함락을 기점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50%를 밑돌기 시작해 여전히 하락 중이다. 8월 이전만 해도 아프간 철군을 지지하던 유권자 비율이 69%로 압도적이었는데, 이번 카불 함락 이후 철군 자체에 대한 지지가 20% 이상 급락한 것으로 조사된다. 바이든 정부가 아프간 철수를 잘못 관리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4명 중 3명 정도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반등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델타 변이로 인해 코로나19 감염자 및 사망자도 다시 급증하고 있으며 경제도 심상치 않다. 하루 입원환자가 10만명을 넘어섰고 인플레이션 공포도 확산되는 추세다. 연방준비은행이 1200억달러 상당의 월간 자산매입 규모를 축소할 수도 있다고 예고한 이유다.

미국 민주당으로서는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간선거는 대통령 집권당의 무덤이었다. 미 갤럽 조사에 의하면 1946년 이후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은 하원에서 평균 25석을 잃었고,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50% 이하일 때는 평균 37석을 잃었다. 현재 하원에서 민주당은 220석으로 212석의 공화당에 단 8석만 앞서 있다. 작년에 이루어진 인구 대비 선거구 재조정도 공화당에 유리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될 것은 거의 기정사실인 듯하다. 상원의 경우는 100석 중 34석에 대한 선거를 치를 예정인데 경합지역으로 분류되는 핵심 7개 지역(조지아, 애리조나, 네바다, 뉴햄프셔 주의 민주당 의석과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주의 공화당 의석)도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더 유리한 곳이다.

현재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1994년과 2010년의 중간선거 결과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다음해에 치러진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 52석, 상원 8석을 잃어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 지위를 상실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도 2010년 하원 중간선거에서 63석을 더 잃어 다수당 지위를 상실했고,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를 회복할 때까지 8년 동안 소수당 신세였다. 특히 2014년 선거에서는 공화당에 상원 다수당 지위도 넘겨주면서 오바마 2기 정부는 사실상 ‘식물정부’로 전락했다.

공교롭게도 이 두 번의 중간선거 결과는 우리 남북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94년 중간선거 결과는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 핵합의를 맺은 지 2주 만에 나왔고 이후 클린턴 정부는 공화당의 반대로 북한과 합의했던 연간 중유 50만t 공급마저 제때에 이행하지 못했다. 정부 예산을 틀어쥔 하원의 공화당이 적극 반대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는 2008년 금융위기와 이어진 중간선거 패배로 곤경에 빠진 오바마 정부가 택한 궁여지책이기도 했다.

현재 바이든 정부는 중간선거 이전에도 ‘식물정부’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있다. 워낙 상황이 심각하다 보니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하원의 외교 및 군사위원회 4곳에서 이번 아프간 철군 관련 의회 청문회 및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정치양극화는 여전히 심각하다. 공화당계열 유권자의 바이든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한 자릿수를 넘지 못한다. 한편 트럼프도 이번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정치재개에 본격 나섰는데 그의 영향력은 정치자금 모금액으로 가늠할 수 있다.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8200만달러(약 944억원)를 모금했다. 이는 공화당 정치모금기구가 모은 전체모금액 8400만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래저래 이번 아프간 사태는 내년 중간선거까지 계속 정치쟁점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 외교적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에 돌파구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은 내년 여름 정도까지 아닌가 싶다. 한국의 대선 시기와 겹친다. 문재인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국면 아닌가 싶다. 물론 대선도 한국의 중장기 외교전략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장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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