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출판’의 새로운 상상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이맘때가 되면 서점가에는 트렌드 서적이 속속 줄을 잇는다. 몇 년 전만 해도 9월은 아니었다. 다가오는 한 해를 조금이라도 먼저 내다보려는 독자의 마음, 트렌드 책 가운데 가장 앞에 서서 주목을 받고자 하는 출판사의 마음 가운데 어느 쪽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결과일까. 트렌드 책뿐 아니라 매해 반복해서 나오는 가계부나 다이어리도 선보이는 시기를 앞당기다 보니 이제 9월이면 2022라는 숫자를 서점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올해 마음먹은 일이 적지 않게 남은 상황에서 벌써 다음해를 재촉하는 모양새에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지곤 한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비슷한 사례는 책뿐 아니라 서점 행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 해 많은 독자가 찾아 화제를 만들며 사회에 이런저런 영향과 이야기를 전한 책을 꼽는 올해의 책 행사는 보통 독자 투표로 진행된다. 과거에는 그래도 그해 10월까지 나온 책을 후보로 여겨 11월에 들어서야 시작했지만, 근래 들어서는 10월 말이면 후보작과 투표 독려 문구가 서점 곳곳에 올라온다. 상반기 결산을 6월에 하는데 한 해의 결산을 10월에 시작한다면 하반기에 너무 적은 기회를 주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지난해 11월을 시작점으로 삼는다면 전체 기간은 한 해가 되겠지만, ‘한 해의 책’이 아닌 ‘올해의 책’이기에 역시 어색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렇다고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출간된 도서를 기준으로 다음해 초에 올해의 책 투표를 하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명실상부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적정수준을 생각해볼 필요는 있겠다는 소극적 제안이다. 적정기술이라는 말이 있다. 기술이 적용되는 사회 공동체의 상황과 문화를 고려하여 일방적 의미의 발전을 좇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기술을 뜻한다. 같은 맥락에서 ‘적정출판’을 떠올려본다. 다음해의 트렌드를 전망하는 출판물의 목적에 부합하는 적정출판의 시기는 언제일까. 올해를 충분히 살펴 내년을 내다볼 안목을 확보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독자가 이를 가깝게 이해하며 다음 내디딜 발걸음을 준비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남은 한 해의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이 고민이 출간 시기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출간 시점이 언제이든 잊지 말아야 할 부분 아닐까 싶다.

적정출판이란 말을 떠올리니 온갖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다양성을 근간으로 삼는 출판의 시도에 적정한 횟수와 규모를 책정하는 게 가능할까 싶은 커다란 물음부터 이번에 펴내는 신간의 1쇄 제작 부수와 가격이 해당 도서의 내용과 기획의 맥락 그리고 시장 상황에 적정했느냐는 구체적이지만 만만찮게 어려운 물음까지. 결국 수치가 아니라 방향을 적정출판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이 여럿 나오는 게 문제일지, 다른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데도 판매가 높은 책과 비슷하게 보이려 같은 책처럼 만드는 게 문제일지 생각해보면 답이 보일 것도 같다. 적정기술이 기술의 일괄 적용에서 벗어나는 시도이듯 적정출판 또한 같은 맥락에서 곱씹어볼 새로운 상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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