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녹음기, 전자 코

신예슬 음악평론가

얼마 전 양조사 친구와 신체감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양조에서는 맛과 향을 잘 분석하는 능력이 무척이나 중요하고, 이를 위해 후각과 미각을 계속 섬세히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적으로 술을 시음하고 평가하는 소믈리에와 마찬가지로 감각을 정교화하는 일은 양조사에게도 중요한 일이라 했다. 그런데 맛과 향에 대한 감각은 사람마다 너무 다른 데다 한 번에 많이 시음하거나 시향하면 감각이 무뎌지지 않으냐 물었다. 그랬더니 물론 그렇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사람을 대신해 향과 맛을 분석해주는 ‘전자 코’나 ‘전자 혀’도 사용한다는 흥미진진한 대답이 돌아왔다. 전자 코와 혀라니. 처음 들어보는 기계들이었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신예슬 음악평론가

전자 코의 존재가 궁금해져 그 용례를 조금 더 찾아보니, 전자 코는 생각보다 넓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식재료 근처에 기계를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부패 정도를 분석해 알려주는 기계도 있었고, 뛰어난 후각을 지닌 탐지견들이 더 정확히 냄새를 인식할 수 있게 훈련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어떤 연구팀은 사람이 내뱉은 숨의 성분을 분석해 당뇨를 진단하는 방안도 개발했다. 아직 일상화되지 않아 그 존재가 덜 알려지긴 했으나, 대기화학자 폴 몽크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전자 후각기기는 감각의 전자화에서 뒤처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전자 코가 사람의 상태에 대해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고, 음식에서부터 죽음에까지 아주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한 굉장히 효과적인 도구라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기계가 내겐 무척 낯설었지만,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온 다른 장치들을 떠올려보면 완전히 전례없는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눈과 귀의 기능을 닮은 기계들을 늘 손에 쥐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확장된 눈’이라고도 표현하는 카메라는 시각 정보를 필름 같은 물질이나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하며, ‘사람을 대신해서 듣는 기계’라고 불리기도 했던 녹음기는 소리를 LP나 테이프 같은 물질이나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한다. 내가 보고 들은 세계를 기록하고 재현할 수 있다는 데 집중하느라 그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들은 신체 바깥에 존재하는 확장된 감각기관과 다름없었다.

카메라와 녹음기 같은 장비가 일상 속에 깊게 침투한 시대만을 살아온 나는 자연스레 이 장비들에 의존해왔다. 여행지에서 풍경을 즐길 여유가 없다면 남는 건 사진이라 생각하며 사진을 찍어놓고 속히 떠나거나, 음악 공연에서 영 집중하지 못할 때면 나중에 음반으로 다시 듣자고 생각하며 멍한 상태로 머물렀던 적도 많다. 내 눈으로 잘 볼 수 없는 것, 내 귀로 잘 들을 수 없는 것에 다가가기 위해 이 장비들을 유용히 활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보면 때론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는 능력 혹은 감각하는 능력 자체가 무뎌지는 것 같아 한동안 기계와 조금 거리를 두려고도 해봤지만, 이들은 이미 생활 환경과 감각에 너무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사실을 인지한 뒤엔 이 기계들에 감각을 마냥 위탁하지 않고, 이들이 나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스스로 잘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이 남았다. 연구자들의 말처럼 이 도구들은 효과적일 뿐 아니라 인간 상태에 대한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이 후각 기계가 카메라나 녹음기처럼 상용화되었을 때, 인간 생활을 둘러싼 ‘후각적 풍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리고 우리가 냄새와 향의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렇게 감각이 하나둘씩 전자화되는 과정을 상상하며 인간의 본래 신체조건을 차근히 돌아본다. 인간은 기계 때문에 확장도 되지만 무언가 절단되기도 한다는 매클루언의 오래된 말을 다시 떠올리며, 앞으로도 인간과 공존할 ‘감각하는 기계’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지, 그로 인해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신체감각은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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