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는 자동차가 아니다

차준철 논설위원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인 페이스북이 한 걸음 물러서기는 했다. 자회사 인스타그램의 13세 미만 어린이용 버전 개발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인스타그램이 청소년 정신건강에 유해하다는 내부 연구 결과를 익히 알면서도 이를 무시·방관해왔다”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의 폭로 이후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의회 청문회까지 소집되자 꼬리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개발이 좋은 일이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왜 어린이들까지 소셜미디어로 데려오려는 걸까. 그들 말대로, 어린이들은 광고 없는 청정한 앱에서 놀고 부모는 자녀의 소셜미디어 활동을 유효적절히 지켜보도록 하기 위한 것일까.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탐사보도를 통해 페이스북의 악덕한 실체를 고발했다. 청소년 사용자들이 최고의 모습을 내보이려고 하는 인스타그램 안에서 압박감과 위화감을 느끼고 불안·우울증에 자살 충동까지 겪고 있다는 등의 내부 연구자료를 페이스북이 모른 체했다고 보도했다. 이외에도 페이스북은 유명인 사용자를 따로 관리하며 폭력·선동성 게시물 제재에서 빼주고, 인신매매 집단이나 마약 카르텔의 범죄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코로나19 백신 거부 현상이 확산하는 상황도 방치한 것으로 지적됐다. 페이스북 측은 오래전 자료이고, 개선 중인 사안이라며 반박했지만 보도대로라면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가 아니라 ‘안티소셜(반사회) 미디어’라 부를 법하다.

그들이 어린이를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사용자를 늘리려는 것이다. 사용자 수는 곧 수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매일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10대 청소년은 최근 10년 새 꾸준히 감소해 500만명대인데 인스타그램 쪽은 2200만명이나 된다. 또 인스타그램 사용자의 40%가 22세 이하라고 한다. 이렇듯 청소년층에 인기가 높은 인스타그램이 예비 사용자인 어린이층을 두껍게 확보하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그들의 인식이다. 애덤 모세리 인스타그램 최고경영자는 최근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많지만, 자동차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한다. 소셜미디어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사람을 연결하는 소셜미디어가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는 뜻이었다고 부랴부랴 둘러댔지만, 청소년들의 건강과 생명보다 플랫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아찔하다 못해 무서운 생각이다. 찬반론은 있겠지만, 소셜미디어를 해악이 명백하고 규제가 필요한 담배나 마약에 비유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구글의 유튜브는 이때다 싶었는지 “우리 동영상은 청소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정신건강을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많다는 게 근거 중 하나다. 하지만 유튜브도 페이스북과 다를 바 없다. 내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준다는 명목으로 알고리즘을 개편해 분열과 분노를 증폭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양산한 것은 마찬가지다. 이른바 가짜뉴스로 불리는 허위·조작 정보가 유튜브에 넘쳐나는 현실을 이미 겪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둘러싼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이번 일은 소셜미디어의 폐해를 다시금 짚어보게 한다. 이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일찌감치 소셜미디어가 성행하고 있는 국내 상황에 충분히 적용해 살펴볼 수 있다. 연결과 교류는 좋지만, 제각기 인정받기를 경쟁하는 소셜미디어 세상 속에서 얼마나 건전한 공론이 이루어졌을까. 그 안에서 내 편, 네 편 갈려 싸우고 대립하기 일쑤였다. 선거 때면 막말과 헛소리가 난무하고 거짓으로 뒤덮이기도 했다. 소셜미디어들은 제 잘못 없다 하고 사용자 탓을 할 테지만 과연 그럴까. 갈등의 불씨가 커지고 왜곡된 정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공간이 소셜미디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셜미디어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소셜미디어 빅테크 기업의 최대 잘못은 ‘아닌 척’이다. 시시각각 사용자들을 감시하며 접속 데이터를 뽑아내 돈벌이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날의 행동까지 조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일이 기술 발달과 더불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처럼 뒷짐진 채 속이고 있다. 그래서 갈수록 교묘하게 사람들을 가둬두려 한다. 미국 미디어학자인 시바 바이디야나단은 페이스북 있는 세상이 없는 세상보다 잔인하고 어리석고 살인적이라고 했다. 이런 세상은 기필코 탈출해야 옳다. 나쁜 건 끊는 게 상책이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