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총량제’부터 점검해야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징어 게임>의 가장 큰 아이러니이자 다른 데스게임들에 비교되는 가장 큰 차별성은, 선한 사람들이 서로를 죽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게임에 계속 참가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스토리들은 게임에 강제로 투입되었지만 <오징어 게임>은 게임참가가 자발적이라는 면에서 독특하다. 이정재 캐릭터가 아무리 따뜻하게 그려진다고 해도 결국 그는 부자로 재탄생하기 위해 자신만큼 착한 타인들을 죽이는 목표에 끝까지 충실한다. 투표로 게임을 중단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후반부는 영리하게 악인들의 포악함을 강조하여 이들의 처치라는 목표를 내세워 선한 주인공들을 감싸주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게임에 지면 상대가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게임에서 이기려 한 이상 모든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죽음에 대한 방조범들이고 경찰이 실제로 현장을 덮쳤다면 플레이어들 모두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처벌되었을 것이다. 채무변제, 가족과의 재회, 가난탈출 등이 게임참가의 이유지만, 게임참가가 상대방의 죽음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비강제적 강제를 아무리 강조해도 이런 이유들이 살인방조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유일하게 타인을 죽이는 게임에 참여할 정당성(긴급피난)을 가진 사람은 게임판돈을 얻지 못하면 살해되어야 하는 덕수 역의 허성태뿐이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런 스토리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게임 밖의 우리 사회가 ‘오징어 게임’과 같은 승자독식의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의 조세율, OECD 최저의 사회복지예산비율, OECD 최악자살률로 대표되는 사회안전망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 후보의 ‘식당총량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정답이 나와 있다. 이 후보 스스로 열악한 사회안전망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식당총량제를 하는 것은 식당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을 절망으로 밀어넣을 뿐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과 식당 비율이 높은 이유는 대기업, 공무원, 전문직이 아니고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어려운 우리나라 노동시장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더 근본적인 원인의 현상일 뿐이다. 열악한 노동시장의 원인은 바로 이미 존재하는 또 다른 총량제(정원제)들이다. 변호사정원제를 포함하여 일반국민의 권리를 억눌러서 일부 기득권자들이 치부하도록 하는 제도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애시당초 국민들의 변호사가 될 기회를 인구 대비 미국의 8분의 1, 독일의 4분의 1 등 유사 직역을 감안해도 극도로 통제하니 일반국민들은 변호사가 못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과도한 변호사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오징어 게임>처럼 ‘너를 죽여야 내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경제 곳곳에 여기저기 칸막이를 만들어놓고 칸막이를 먼저 차지한 사람들의 부와 독점을 보호하기 위해 정원제를 하면 당연히 그 칸막이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연히 식당총량제도 필요하고, 편의점총량제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택시, 주유소, 농작물 등 공공안전과 식량정책 등과 같이 공익적인 이유로 총량제를 예외적으로 필요로 하는 분야들은 있다.) 이런 면에서 이재명 후보는 ‘변호사정원제도 있는데 왜 식당총량제를 못하냐’고 답할 것이 아니었다. ‘변호사정원제 등 기존 총량제를 없애서 노동시장을 개선하여 자영업자 개미지옥을 막겠다’라고 답했어야 한다.

대기업만 진입할 수 있는 각종 허가제들도 정원제의 또 다른 형식이다. 새로운 산업 분야가 열리면 최소자본요건을 달아 허가제로 만든다. 이를 충족할 수 있는 대형자본만 황금알을 낳는 신산업 분야를 선점하고 한국 대기업들의 고질적 병폐인 독과점행위로 오염시킨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는 중소기업들도 자유롭게 뛰어드는 인터넷망사업에 대기업들만 입장시킨 지 30년, SK는 세계 유일의 ‘망이용료’ 논쟁을 일으켜 품앗이로 유지되던 인터넷의 비용분담구조를 흔드는 한편 KT는 정작 네트워크 관리는 하청을 주고 있다.

또 대기업들의 불공정 거래행위들은 중소기업들을 피폐화시켜 중소기업 직장을 불안하게 만든다. 전체 근로자의 85%가 중소기업인 상황에서 이는 자영업자 및 식당 숫자를 증폭시키는 큰 이유이다.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과징금의 85%가 취소되고 대기업들 간의 인수·합병을 수월하게 용납하는 대기업중심 경제규제 역시 ‘정원제’의 한 축이다. 지금도 해외경쟁당국이 거부하는 아시아나-KAL, 현대중공업-대우조선 인수·합병이 빤히 진행되고 있다. 전 사회적 오징어 게임, 기존 총량제부터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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