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장’의 정치공학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선사시대 무덤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를 상징했다. 남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의 권력 후광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왕권시대로 들어서면 사후의 의례마저 정치의 장으로 변모된다. 대표적인 것이 왕가의 상장례를 둘러싼 17세기 조선의 예송논쟁이다. 비록 일제에 의해 당파싸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덮여졌지만 왕권은 특수한 위치에 있는가, 아니면 신하들도 참여하는 공동의 정치세력인가를 묻는 논쟁이기도 했다. 예(禮)를 통해 왕을 규정하며 권력의 정체성에 물음을 던진, 근대국가의 맹아를 보여주는 역사의 장이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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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과 남인들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일부는 상대방을 인정하기도 했다. 성리학의 해석 차이에서 온 절대왕권에 대한 견제 방식의 문제이자 폭력에 뿌리를 둔 왕권으로 하여금 천명을 따르는 왕도정치를 어떻게 구현하게 할 것인가라는 정치철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부침을 가져왔지만 논쟁의 결실은 18세기에 안정된 왕권에 기반한 국가개혁의 주춧돌이 되었다.

이 시기 서양에서는 계몽주의가 활발한 가운데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홉스, 로크, 루소 등의 사회계약설은 국가라는 집단 통치를 통해 개인의 주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시민의 생명을 야만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국가통치를 영원한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유한한 신으로 보았다. 따라서 국가의 폭력을 더욱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 작은 일에도 정의를 주장하지만, 국가가 대외 전쟁을 개시하면 국민들은 같은 종에 대한 예의는 벗어버리고 살육에 열광한다.

석가모니불의 카필라국은 코살라국에 의해, 코살라국은 마가다국에 의해 병합된다. 성자도 모국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다. 그가 왕자의 자리를 놓고 출가한 것도 이러한 국가의 태생적 한계인 폭력의 연쇄를 막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는 아예 로마제국이라는 거대 폭력 앞에 맨몸으로 마주 섰다. 그들은 폭력의 근본인 무지와 탐욕을 직시했다.

어떻게 보면 고등종교는 세상의 폭력을 줄이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그러나 왕권에 신성을 부여함으로써 종교 또한 폭력에 가담하거나 오히려 노골적으로 폭력을 자행하기도 했다. 종교의 세계를 강제하지 않는 사랑과 관용을 국가 구성원들이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강조한 시민종교다. 또한 국가에 대한 민중의 신뢰를 시민종교로 정의내린 것은 국가의 폭력성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보적인 사람들은 애국심이 신앙인 미국과 같은 시민종교로서의 국가는 파시즘으로 변질될 위험성도 있다고 본다. 자본의 이익 추구와 이를 위한 정복 행위가 국민 지지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반이슬람주의를 현대판 십자군전쟁이라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경우, 한때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린 것은 정치군인들이다. 이 땅의 군사정권은 이중의 폭력을 등에 업고 나왔다. 무자비한 전쟁 폭력의 트라우마와 자신의 폭력성에 대한 공포가 그것이다. 주범들 중 한 명인 노태우는 전방의 부대를 빼내 쿠데타에 적극 가담했다. 그리고 총구를 공화국의 주권자에게 들이댔다. 이처럼 백성을 살상한 노태우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결정한 것은 그의 죄목을 국민의 동의 없이 공식적으로 장부에서 지운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인으로 둔갑한 후의 공적으로 그의 죗값을 상쇄시킬 수는 없다. 이토록 낮은 수준의 정치를 국민들이 방치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의 장례를 국가가 점유함으로써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희한한 구형을 추인한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것은 공화국을 파괴하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일이다. 이를 위해 5·18 관련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죄하도록 해야 한다.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그가 사라지는 순간, 그 자신에게 사회나 국가도 사라진다. 생전의 공적 관계는 소멸된다. 국가는 살아 있는 폭력 주범들로 하여금 희생자 유족들과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국가폭력의 재생산에 쐐기를 박는 길이기도 하다. 가해자들의 장례를 정치도구화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다. 지수화풍으로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공공의 적’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내 이득을 보겠다고 생각한다면, 왕권국가와 식민강권통치를 벗어나 피와 땀으로 세운 민주공화국의 이념과 역사를 부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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