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의날을 지역자치의날로

‘지방 방송은 꺼라.’ 모임 자리의 한쪽에서 다른 얘기를 할 때 자주 듣는 소리다. 이 말에는 지방에 대한 폄하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지방의 소리는 중앙의 얘기를 방해하는 사적인 얘기나 중요하지 않은 얘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 뉴스건 자국의 소식을 먼저 전하고 세계 소식을 전한다. 밀접한 생활 영역인 자국의 소식이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라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겐 생활과 직접 관련된 지역 소식이 더 궁금하고 전국 소식이 덜 궁금할 것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지역의 주요 사안에 대해 중앙이 결정함으로써 중앙의 권력이 지역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중앙집중적인 우리나라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지역의 주요 사안에 대해서조차 지방은 결정권이 없다. 지역의 주권이 지역 주민이 아니라 전체 국민 혹은 중앙 정부에 있는 격이다.

지난 10월29일은 지방자치의날이었다. 행정안전부가 울산에서 지방자치의날 기념식을 열었고, 김부겸 국무총리는 자치단체에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주민의 참여와 소통의 장을 넓히는 본격적인 ‘자치 분권 2.0’시대를 열어 가겠다고 밝혔다. 현 정부의 자치 분권 정책은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 분권’으로 요약된다. 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라는 개념을 폐기하고 ‘지방 정부’로 변경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무리 ‘버금’이라는 말로 한계를 설정한다고 해도 지방이라는 말을 그대로 두고 연방제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

연방제의 ‘방(邦)’은 ‘지방(地方)’이 아니라 ‘나라’를 의미하며 정확히 말하면 ‘연방 구성 국가’다. 그것을 미국에서는 스테이트(state)라고 하며 독일에서는 란트(Land)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옮길 때도 ‘지방’이 아니라 나라나 국토의 의미를 가진 ‘주(州)’로 번역한다. 연방제 국가에서 지방자치의 범위는 연방과 주(州)의 관계가 아니라, 주(州)와 그 하부 자치 지역의 관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말하는 ‘버금가는 연방제’는 어느 범위를 말하는가.

지방은 중앙이나 수도에 대해 그 변방 혹은 변두리를 의미한다. ‘지방 정부’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해도 ‘지방’이라는 단어를 고수한다면,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들은 여전히 변두리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어렵다. 중앙과 지방이라는 말은 전국과 지역이라는 말로 대체되어야 한다. ‘지역’ 개념은 ‘전국’을 일정한 특성에 따라 나눈 지리적 공간을 의미하므로 수도까지 포괄한다. 전국과 지역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수도는 전국 정부가 위치한 도시일 뿐, 그 역시 지역의 하나로 이해된다. 지역 자치가 발전된 나라에서는 변두리를 의미하는 지방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지방자치의날’을 ‘지역자치의날’로 바꿔야 한다.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은 전국 혹은 국가 차원에서는 국민으로서의 개인적 주권자임과 동시에 지역 주민으로서의 집단적 주권자이며, 지역 차원에서는 주민 개인으로서의 지역 주권자다. 주민이 주도하는 진정한 자치분권 2.0이 실현되려면, 분권국가적 정체성을 헌법에 명시하고, 분권적 관계를 ‘중앙’과 ‘지방’의 관계가 아니라 ‘전국’과 ‘지역’의 관계로 재정립해야 한다.

연방제에 버금가는 전국과 지역의 관계는 포괄적인 권력 구조 개편을 요구한다. 우선, 지역 이해관계를 전국적으로 대표하는 제2의회를 설립해 입법부의 분권화를 도모하고, 사법부에도 지역 자치권을 도입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역 권력 구조를 주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지역 정치 구조가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국 권력 구조가 대통령제라 할지라도 지역 권력 구조는 내각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지역 정당의 설립을 허용해 지역 정치의 중앙당 종속을 방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노자는 도(道)와 덕(德)이 펼쳐지는 이상적 통치 형태로서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주장했다. 국가 규모를 줄이기는 어렵지만 자치 분권을 통해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아테네 직접민주주의나 코뮌 정치도 주민 자치의 개념과 통한다. 지역 단위의 자치가 상호 소통과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 내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온 국민의 관심이 대권에 쏠려 있다. 지방자치의날임에도 분권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 듯하다. 대선이 좋은 기회임에도 그 기회가 잘 포착되지 않고 있다. 대권을 장악한 중앙 정부가 주도하는 자치 분권이 아니라 주민이 주도하는 자치 분권이 되기 위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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