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봄꽃보다 고운 까닭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단풍이 봄꽃보다 고운 까닭

폭염이 언제였냐는 듯 나무가 온통 단풍이다. 해 질 녘 노을이 아침노을보다 강렬하듯 남은 삶으로 물든 나뭇잎은 새 생명이 피워낸 봄꽃보다 눈부시다.

노을 비낀 단풍 숲, 가던 수레 멈추고 가만히 바라본다(停車坐愛楓林晩)

곱게 물든 단풍, 봄꽃보다 아름답다

(霜葉紅於二月花) - 두목, ‘산행(山行)’에서

나무는 이별마저 곱게 한다. 봄여름 내내 자기 몸의 일부였던 잎들에 나무는 꽃보다 예쁜 빛깔을 입혀 그들을 떨구어낸다. 지체를 떼어내는 아픔을 미학으로 승화시킨 나무. 그러나 사람들은 단풍에서 아픔이 아닌 화려함만 본다. 그러다 단풍이 이리저리 뒹굴 때면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나무는 그렇게 잊혀 앙상함으로 겨울을 맞는다.

그래도 나무는 말이 없다. 신록으로 새봄을 펼쳐내도 사람들은 꽃을 봐야 봄의 도래를 노래한다. 단풍으로 겨울의 도래를 아리게 드러내도 사람들은 화사한 가을에만 흠뻑 취한다. 그러다 한풍(寒風)이 살을 베듯 남은 잎을 떨구면 사람들은 말을 닫고, 나무는 그 바람으로 입을 연다.

사람들은 그런 나무더러 아낌없이 준다고 한다. 역시 인간답다. 나무는 봄이면 새잎을 돋우고 여름이면 녹음을 드리우며 가을이면 단풍 빚어내다 겨울에는 맨 가지로 살아갈 뿐, 사람들을 위해 철마다 수고로이 외양을 바꿔가지 않는다. 살아있기에, 또 살아가기에 새잎 돋우고 녹음 지으며 단풍 빚을 뿐, 누군가를 위해 그리했음이 아니다. 아낌없이 준다는 말은 그저 욕심에 전, 남김없이 앗아가려는 인간들의 교활한 화법이었을 따름이다. 그래놓고도 “사람들은 길 가다 아름드리나무를 보면, 옷을 벗어놓고 모자를 걸어두고는 그 아래서 곤히 잠들기도 한다. 면식이 있음도 아니요, 정분이 있음도 아닌데 나무를 사뭇 편안해하고 미더워한다.”(<여씨춘추>)

자기 삶을 살아왔을 따름인데 남에게 편안함과 미더움을 안겨주는 나무, 하여 옛사람은 “언덕 위의 거목을 그리워함은 나무가 어떠한지를 익히 알기”때문이라 했다. 우리는 그런 거목 하나 없는 갑갑한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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