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 대선’을 부추기는 것들

김진우 정치부장

갈수록 태산이다. 거짓과 막말과 네거티브가 난무한다. ‘내로남불’과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식 언행만 두드러진다. 미래비전과 정책 경쟁은 뒷전이다.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됐다.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선 얘기다.

김진우 정치부장

김진우 정치부장

어느 정도 예상은 됐던 일이지만, 정도가 심하다. 20대 대선이 역대 최고 ‘비호감 대선’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대선 후보들에 대한 불신이 커진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형수 쌍욕’이나 ‘손바닥 왕(王)자’ ‘개 사과’ 등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언행들도 더해졌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63%)와 윤석열 후보(56%)에 대한 비호감도는 60%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반면 호감도는 30%대에 머물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지지할 후보나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늘어나고,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커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개탄과 질타는 정치권의 안중에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비호감 대선’을 부추기는 데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얘가 더 비호감”이라며 상대방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흠집내기에 혈안이다. 상대방에 대한 공격에만 기를 쓰고 달려들다보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대선 후보들의 배우자를 둘러싼 여야의 공세가 대표적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의 낙상사고를 두고 폭행 의혹을 제기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부인을 폭행했다고 하면 헛소리 정도로 생각할 텐데 이 후보가 그런 소문이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배현진 최고위원은 “경찰 경호인력이 24시간 후보와 가족을 경호하는데 119 구급대 이송을 경호인력이 전혀 몰랐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당의 최고위원들이 공식회의 석상에서 근거도 없이 지라시 등에 나도는 루머 등을 이용해 무책임한 의혹 제기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도 도긴개긴이다. 이재명 후보의 수행실장인 한준호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와 윤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를 비교하며 “두 아이의 엄마 김혜경 vs 토리 엄마 김건희. 영부인도 국격을 대변한다”고 적었다. 김혜경씨가 두 아이를 출산한 반면 김건희씨는 슬하에 자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 의원은 1시간이 지나지 않아 “김혜경 vs 김건희”로 글을 고쳤지만 출산 여부를 우열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샀다.

대선에서는 후보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의 도덕성이나 자질 등도 유권자의 관심과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남의 불행까지 악용하고, 사실보다 억측에 기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이미 한국 사회의 분열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모두들 우려한다. 그런데 여야의 최근 본새를 보면 이번 대선도 극단화된 진영 대결로 진행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서로 패를 나누고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신념이나 정서에 근거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경향이 커질 것이란 얘기다. 대선 후보들이 이런 부정적인 흐름에 편승할 경우 이번 대선은 더욱 거칠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의 정치·사회적 퇴행이 진행될 경우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 분열이 심화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과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 과정에서 진실과 사실이 아닌 주관적 신념과 왜곡된 정보의 폐해를 목도했다. 각종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이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악마화하고 배제하고 공격했다. 지난 1월 트럼프 추종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초유의 사건은 이런 흐름의 암울한 버전이었다. 정치권이 거짓과 왜곡을 일삼고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한국도 이런 버전이 현실화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공존과 국민통합, 미래를 입에 달고 사는 대선 후보뿐 아니라 정치권의 맹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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