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 조조(曹操)의 심보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우리 속 조조(曹操)의 심보

“내가 천하 사람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은 나를 저버리지 말아야 하오!” 특유의 의심증에 휩싸인 조조가 자신을 후대했던 여백사 일가족을 무참히 살인한 후 내뱉은 말이다. 물론 이는 정사가 아닌 소설 <삼국연의>에서 조조의 간특함을 드러내기 위해 허구적으로 꾸며낸 말이다. 그런데 1800년쯤 지난 오늘날, 조조의 이 말을 자기 삶의 기본으로 삼고 세상에 군림하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권력이 제법 되고, 그래서 섬김을 받는 데 익숙해진 이들은 세상을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당연시하는 듯도 싶다.

함량 미달의 정치인이나 재벌도 그런 듯하고 ‘기레기’라 지탄되는 언론인도 그런 듯하다. 선출직도 아니면서 대한민국은 자신들이 수호한다는 망상에 빠진 검찰이나 법조계 종사자도 그런 듯하다. 누워서 싯누런 가래침을 뱉는 꼴이지만 필자가 속해 있는 교수 집단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조조의 말을 패러디하여 “내가 공정을 저버릴지언정 공정이 나를 저버리지는 말아야 한다”로 바꿔보면, 이에 해당되는 이들을 발견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특히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에서 이러한 심보를 접하는 일은 별로 새삼스러울 바가 못 된다. 교수사회는 물론이고 학생사회도 매일반이다. 문제는 이러한 심보가 자꾸 고약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서울대 구성원이 됨으로써 누리게 된 바는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므로 이를 누림은 공정하다. 따라서 그것이 서울대 바깥에서 보면 특혜가 된다고 해도 그것을 못 누리게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같은 심리가 삶의 저변에 제법 두껍게 깔려 있기에 그러하다.

‘웃프게도’ 그들은 집단 차원에서는 정의롭다고 해도, 그로 인해 자기가 불편해지거나 더 누릴 수 있는 길이 제한된다면 공정하지 못하다며 이를 비난한다. 반면에 자신에게 편리하거나 더 이익이 된다면, 설령 전체 차원에서 정의롭지 못하다고 해도 굳이 이를 문제 삼으려 하지 않는다. 타인의 내로남불에는 민감하지만 자신의 내로남불에는 그저 둔감하다. 어쩌면 그리 살 수 있는 힘이나 돈이 없어서 그렇지, 조조 같은 심보를 지님이 인간 본성에 훨씬 충실한 선택일 수 있다. 스산하기 그지없는 고백이지만 말이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