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전시기획자
카라 워커, A Subtlety, 2014  ⓒ카라 워커, creativetime

카라 워커, A Subtlety, 2014 ⓒ카라 워커, creativetime

누군가가 나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면, 그것은 나를 이해하고 싶기 때문일까. 여성, 남성, 중성, 비장애인, 장애인, 동양인, 서양인, 흑인, 백인, 한국인, 미국인, 일본인, 자본가, 노동자 혹은 또 다른 다양한 기준으로 정리되는 정체성의 카테고리들을 훑어본다. 분류의 틈새로 치고 들어가 기존의 분류에 의지한 정리를 무화시키는 단어들도 떠올려본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실체는 몇 개의 단어 안에 포섭되지 않는다. 만남의 폭이 넓어지고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몇 개의 단어로 개인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가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우리가 여전히 그 습관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국 작가 카라 워커의 작업에는 흑인 여성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캘리포니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13세에 극단적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모임인 KKK 집회가 여전히 남아 있는 남부 도시 애틀랜타로 이주하면서, 인종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경험한 그는 인종과 젠더에 대한 뿌리 깊은 선입견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추적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브루클린의 오래된 ‘도미노 설탕공장’에서 작업 기회를 얻은 그는 10m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스핑크스 형태의 설탕 조각을 세웠다. 흑인 여성 모습의 하얀 스핑크스 주위로 흑설탕 색깔의 작은 소년들이 바구니를 든 채 서 있다. 작가는 사탕수수와 카카오 재배에 착취당하는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현실을 이 오래된 설탕공장으로 끌어들였다.

이 설탕 조각이 그저 달콤하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정체성을 근거로 차별의 명분을 만들고 적용하는 세계의 구조가,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시절로부터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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