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는 배설기관이 없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지구에는 배설기관이 없다

바다는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원시 지구 안 마그마에서 분출한 수증기가 지표면 온도 하강에 따라 비로 떨어져 내리며 바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생명과 상상력의 원천인 바다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아주 오래전 오랜 기간에 걸쳐 벌어진 사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우리는 지구를 달걀에 빗대 지표면과 맨틀 및 핵으로 구분한다. 짐작하듯 맨틀은 흰자, 핵은 노른자에 해당한다. 지각 아래 맨틀이 차지하는 공간은 지구 부피의 약 80%이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바다와 빙하 및 지하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무려 25배가 많은 양의 물이 들어 있다. 활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휘발성 물질의 83%가 수증기라는 점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대양과 남극의 빙하는 우리 감각을 압도할 크기지만 지구 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높진 않다. 하지만 육지보다 더 많은 햇빛을 흡수하는 바닷물은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바람과 파도를 일으켜 인간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

이렇게 바다는 무려 40억년 넘게 지표면을 가공하고 육지 형상을 꾸며왔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 태양과 달의 끌어당김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지구에 있는 물의 양이 일정하게 유지된 것도 그에 못잖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지구가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켜 왔다는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 제임스 러브록은 매년 지구에서 수소가 약 30만t씩 우주로 날아간다고 추정했다. 태양에서 도달한 자외선은 물을 깨서 산소와 수소로 나눈다. 가벼운 수소는 쉽사리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사라지지만 무거운 산소는 암석과 바닷물에 든 철과 반응하여 지각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행성의 바다가 사라진다. 금성과 화성에서 바다를 발견할 수 없는 이유다.

반면 지구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대기 중의 산소가 수소와 반응하여 다시 물로 변했기 때문이다. 지구 역사 어느 순간에 태양 가시광선을 포착하여 산소를 만드는 생명체가 등장한 것이다. 현생 식물의 조상인 남세균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맞춤한 골디락스 행성, 지구는 자외선이란 병도 주고 가시광선이란 약도 주는 태양과 뗄 수 없는 긴밀한 접속이 비로소 가능해졌다. 모든 일이 순조로운 듯했지만 머잖아 지구는 넘쳐나는 광합성 폐기물을 처리해야만 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지구에서 물이 반출되지 못하도록 우리의 바다를 지켜낸 산소였다. 게다가 산소 생성 생명체들이 탕진한 이산화탄소의 양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흔히 종속 생명체라 일컫는 동물의 등장은 필연이었다. 동물은 산소를 들이켜는 대신 이산화탄소를 폐기물로 내놓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지금껏 지구 생태계는 대체로 괜찮았다. 일찍이 지구의 주인이었던 세균은 대사 폐기물을 공유하고 거기서 제각각 에너지를 추출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심해 화산 열수분출공 주변에 사는 생명체들도 마찬가지다. 지표면 터진 피부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황을 포획하는 생태계가 무리 없이 가동된다. 열대우림 숲에서 영장류가 싸놓은 똥은 채 2시간이 지나지 않아 소똥구리 차지가 된다.

이렇듯 지구에는 배설기관이 따로 없다. 가라앉은 고래의 사체는 심해저 생물을 살찌우고 모천으로 회귀한 연어는 죽어 자신의 새끼를 키우고 강가 식물들 생존에 필요한 질소를 공급한다. 본디 지구에 속했던 것은 여간해선 지구를 벗어나기 힘들다. 비록 수소가 1년에 30만t씩 지구 나이만큼인 45억년 동안 사라진다 해도 바닷물은 1%밖에 줄지 않는다. 거의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대개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긴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된다. 신참자 인간들은 바로 이 ‘느림’에 도전했다. 한때 이산화탄소로 공기 중을 떠돌다 뿌리 약한 나무고사리 우듬지로, 그러다 늪에 묻힌 탄소가 석탄기 광물로 탄생하는 데는 꼬박 6000만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3억6000만년 전 일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석탄을 쓰게 된 인류는 채 300년이 지나지 않아 땅속에 묻혀 운신하지 못했던 탄소를 이산화탄소로 환생시켰다. 이산화탄소는 태양 에너지를 한껏 머금고 대기와 바닷물의 운동량을 크게 늘려 인류의 운명을 옥죄어온다. 서둘러 결자해지할 일이다. 내일의 태양은 결코 오늘의 지구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 또 한 해의 해(日)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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