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은 희망이다

월드오미터의 통계에 따르면, 연말까지 코로나19 감염자는 약 2억8000만명, 사망자는 약 540만명, 회복된 사람은 약 2억5000만명에 이른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인류는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와 여전히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삶의 현장이 오히려 최전선이 된 이 전쟁에서 인류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는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아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바이러스가 어떤 형태인지는 알 수 있어도 그들의 철학과 취향, 목표와 영토 확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못한다. 전쟁터의 주도권은 여전히 그들이 쥐고 있다.

광활한 우주 속의 한 점 지구호는 조난신호를 보낼 이웃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지구온난화로 모든 생명이 사라져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을 중심으로 돌 것이다. 언제나 자기 정화작용을 할 뿐이다. 코로나19 사태나 지구온난화의 교훈은 인간중심주의가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숲과 바다와 동물들은 각자 자신들의 세계와 언어가 있다.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은 <숲은 생각한다>(차은정 옮김)에서 숲속의 생물들이 기호의 차원에서 사고하며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마존의 루나족이 그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다. 수억년 동안 지구는 공존의 방식을 진화시켜왔다. 그러나 이웃과 고립되어 도시를 건설한 인간들은 자신들 외에는 대화를 단절하고 있다. 지구는 다양한 생명체의 연방제로 진화하고 있으며, 당연히 그들과 연정하며 살아야 한다.

바이러스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의 채널을 단절시킬 수는 없다. 그들로부터 제휴가 오도록 먼저 인간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인류는 이미 오만이라는 병에 전염되어 있다. 그 어떤 존재도 뽐내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만이 잘난 체하며 살고 있다. 꽃이 아름답다고 자랑하는가. 새들이 하늘을 맘껏 날아다닌다고 우쭐대는가. 인간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어감에도 연방의 일원들을 독재자처럼 소유하며 처분한다. 바이러스는 인간제국주의의 무모함을 경고하고 있다. 겸손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인간은 취약해 부서지기 쉬운 존재다. 생로병사의 한계상황에 처해 짧은 삶을 사는 인간은 늘 위태롭다.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치면, 인류의 역사는 몇십초에 불과하다. 깨달음으로 불생불멸의 영원성을 획득하든, 믿음으로 사후의 천국을 보증하든 이는 유한성을 초월하여 무한으로 가고 싶은 인간 궁극의 희망이다. 존재의 집인 문명도 희망의 산물이다. 정치·경제·학문·예술·종교 등 모든 영역은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인간의 분투다. 생사의 입구·출구도 모르는 삶은 운명 주관자에 대한 저항이다.

그렇다면 절망 또한 희망의 다른 표현이다. 절망의 통곡 속에서 작은 풀뿌리라도 잡는 것은 절망함으로써 희망하기 때문이다. 존 햅타스와 크리스틴 사무엘슨 감독의 다큐 <체념 증후군의 기록>은 폭력을 피해 스웨덴에 망명한 가족들의 아이들이 겪는 특이한 형태의 고통을 보여준다. 절망의 극점인 체념으로 신체의 모든 반응이 멈추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따뜻한 체온은 식지 않는다. 몸을 어루만지고 대화를 시도하는 가족들의 사랑으로 아이들은 이 세계로 귀환한다. 같은 증후군과 사랑의 기적을 전 인류 또한 지난 2년 동안 체험하고 있다. 이 거대한 증후군을 돌파하는 힘도 결국 인간에게 있다. 원인을 안다는 것은 치료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돌부리에 넘어진 자는 돌부리를 짚고 일어서면 된다. 인류는 현실을 직시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이웃과 공존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피가 도는 존재가 있고, 존재들끼리 살을 맞대는 공동체가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원효 대사가 세상은 한마음의 변주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고통의 의미를 찾는 인간 존재를 무한 긍정한 것처럼 절망 너머로 꿈꾸는 희망이 있다. 희망은 희망하는 자의 것이다.

따라서 존재 자체가 희망이다. 대지를 딛고 선 인간이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은혜다. 뭇 생명들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은 축복이다. 마음 근육을 소진시키는 바이러스도, 먹구름처럼 미래를 덮는 지구온난화도, 누가 덜 나쁜지를 판단하는 대선도 모두 새해에 우리가 두 눈 부릅뜨며 전진해야 할 이유들이다. 절망의 끝에선 희망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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