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주택 혐오, 정치가 부채질해서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최근 곳곳이 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한다는 노골적인 문구의 현수막이 여기저기에 걸렸다. 몇 해 전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를 폄훼하는 단어가 어린이 사이에 쓰인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어른들은 엄숙한 목소리로 타락한 세태를 비판했지만, 이는 정말이지 위선적인 일이었다. 공공임대주택 입주자에 대한 ‘담장치기’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최근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비판에는 새로운 양상이 있다. 공공임대주택과 빈곤층에 대한 낙인, 혐오에 찬 표현이나 공공임대주택이 집값을 떨어뜨린다는 근거가 부족한 낭설에 더해, 공공임대주택이 소수에게만 특혜를 주는 제도라는 주장이 시작됐다. 비판자들은 공공임대주택이 입주자에게만 특혜를 주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공정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명백하게도 공공주택의 필요는 불평등한 주거 현실 자체에 있다. 일반 임대주택이 너무 비싸 적절한 공간에서 주거할 기회가 사라진 사람들에게 살 곳을 보장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공공임대주택이다. 공공임대주택이 공정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시장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주거권을 박탈당해도 좋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에게 집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지금처럼 시장이 실패할수록 공공주택은 더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이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보다 왜 이런 주장이 나타났는지 고민하는 편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극심한 경쟁에 내몰면서도 안전과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한국 사회가 각자도생을 미덕으로 만들었다. 언제나 가격이 오르는 ‘집’은 노후를 보장하는 수단이었고, 이런 사회에서 경제정의의 관점을 견지하는 것은 늘 손해를 보는 선택이었다. 더 나은 미래와 사회를 위해 협동할 여지 없이 당면한 이익에만 골몰하도록 사람들을 내몬 것은 이 사회 전체였다.

게다가 정치권은 오랫동안 이 주장을 반복했다. 시·군·구 단체장이나 지역 정치인들은 공공임대주택 건설 계획이 나올 때마다 노골적으로 반대를 표명했다. 지역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그저 주택 공급을 밀어붙이는 관행에도 개선이 필요하나 정치인들이 ‘공공임대주택이 집값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에 편승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오르는 집값은 집을 가진 개인에게만 귀속되고 미래 사회 전체가 함께 질 부담이 되는데 정치는 무한히 개인의 욕망만을 자극하고 있다.

홀로 정의롭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정의로운 선택이 결과를 보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편이 더 낫고, 실현도 가능하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비판적인 시민의식이 절실한 때다. 사회 전체의 권리가 아니라 나의 이익을 보장하겠다고 말하는 후보들을 의심하자. 우리가 만든 무간지옥을 언젠가 탈출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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