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수의 사람을 생각하는 복지정책

연금개혁, 사각지대 해소와 수급권 강화가 우선

[최현수의 사람을 생각하는 복지정책] 연금개혁, 사각지대 해소와 수급권 강화가 우선

“국민연금 개혁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하겠다고 우리 네 명이 공동 선언하면 어떤가”라는 안철수 후보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머지 후보들도 화답했다. 모두가 연금개혁에 원론적으로는 합의했지만, 후보마다 생각은 달랐고 홀로 반대할 수 없으니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3일 대선 후보 4자 정책토론회 이후 연금개혁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구체적인 개혁방안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진행될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

하지만 “연금기금 고갈 문제를 포함하여 불평등과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은 필요하고 100% 동의하지만,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첨예하기 때문에 하나의 방안을 제시하기 쉽지 않다”는 이재명 후보의 말처럼 연금개혁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2057년 연금기금 고갈’이라는 2018년 국민연금 재정재계산 결과는 연금개혁 필요성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과 재정건전성 논리를 강화시켰다. 게다가 얼마 전 ‘이대로라면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발표는, 불안정한 현실 속에 미래마저 불투명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고사하고 연금개혁을 세대 간의 갈등 문제로 만들고 있다. 특히 OECD 1위인 노인빈곤율과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고려하면 재정의 지속 가능성만을 내세울 수도 없다. 국민연금의 9%(보험료율)와 40%(40년 가입 시 명목 소득대체율)라는 숫자만을 조정해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이든,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이든 이를 제시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모수개혁’보다 ‘구조개혁’이 우선

앞선 대통령들조차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못한 마당에 선거를 앞둔 후보들이 용기를 내서 구체적인 연금개혁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대통령 후보라면 대선 전에 반드시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현재 노인세대든,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세대든,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청년세대든 공적연금을 통해 노후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원칙 아래 개혁을 추진한다고 말이다. 연금개혁의 일차적 목적은 국민연금 기금 고갈시점을 늦춰 재정건전성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연금수급권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통령 후보는 이러한 연금개혁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도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며 새 정부가 추진할 보험료율 인상 등 연금개혁안에 동의할 수 있고 사회적 합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건전성에 천착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중심의 ‘모수 개혁’보다는 ‘구조 개혁’에 대한 방향이 우선 제시되어야 한다. 사각지대 해소와 가입기간 연장을 통해 실질 소득대체율(보장성)을 높일 수 있는 수급권 강화 전략이 중요하다. 이를 전제로 국민연금·기초연금 간 역할과 연계방식을 설정하는 개혁안이 선행되어야 한다. 혹시나 더 내고 덜 받거나 더 내고 더 받는 모수 개혁이 이루어진다 해도 사각지대에 오래 머물러 수급권 확보가 어려운 불안정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남의 일이다. 2021년 10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는 약 2216만명이며 임의(계속)가입을 제외한 사업장·지역가입자는 2121만명으로, 15~59세 경제활동인구 약 2268만명을 고려하면 대부분이 가입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역가입자(663만명) 중 약 310만명이 납부예외자에 해당한다. 또한 2020년 특고·프리랜서·플랫폼 등 인적용역 업종별 사업소득 원천징수 비임금 노동자가 약 704만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새로운 기타 자영업이 약 49%를 차지할 정도로 비정형 노동이 증가하고 있다(경향신문 2월8일자).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51.6%에 불과할 정도로 광범위한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상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의 개혁 방안’ 되새길 필요

사각지대 해소를 통해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늘려 수급권과 보장성을 확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실시간 소득파악 체계를 기반으로 한 소득 중심의 전 국민 사회보험이다. 경제활동으로 소득이 발생한 국민 누구나 보험료를 납부하여 일한 만큼 가입기간이 쌓이고 사각지대가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연금개혁 로드맵이 필요하다. 이때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 당시 추진했다가 중단된 국세청 사회보험료 통합 징수와 환급 방식의 사회보험료 지원(두루누리) 확대 개편이다.

2022년 약 1조원의 예산으로 지원되는 두루누리 사업의 연금보험료 지원 대상을 납부예외자나 실시간 소득파악에 의해 신규로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비임금 노동자와 영세자영자로 확대해야 한다.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연금수급권과 보장성을 높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미래의 노인빈곤 대응을 위한 국가재정 부담을 줄일 수도 있으니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2022년 조세지출예산 60조원 중 연말정산 때 대부분의 정규 근로자가 당연히 여기고 혜택받는 국민연금보험료 소득공제 약 3조8000억원, 개인연금 등 연금계좌세액공제는 약 1조3000억원에 이른다. 이를 조정해서라도 사각지대에 있는 납부예외자나 불안정 노동자에게 연금보험료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불평등과 격차 해소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연금개혁은 미루었지만 코로나 위기에서 노동자의 일자리 상실과 소득 감소에 대응할 수 없었던 고용안전망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했다.

대선 후보들은 앞으로 남은 정책토론에서 적어도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를 고려한 구조적 연금개혁안과 함께 소득 중심의 국민연금 전환에 대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국세청 사회보험료 원천징수 및 환급 방식의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를 통한 사각지대 해소방안도 제시되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은 결국 기금 고갈시점을 늦추기 위한 모수 개혁에 앞서 모든 세대의 실질적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연금수급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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