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선생이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코로나19에 힘들게 버텨온 지 햇수로 벌써 3년째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가파르게 늘어나 하루 10만명을 넘었고 방역대책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거리 두기는 마스크와 달리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날이 갈수록 사회적·경제적 피해가 늘어났다. 학수고대하던 백신이 개발됐지만, 비웃기라도 하듯 알파에서 베타, 감마, 델타, 오미크론으로 감염력이 높거나 백신 효능을 떨어뜨리는 변이가 등장하면서 백신의 ‘게임 체인저’ 대망론도 무산됐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코로나 사태에서 다시 확인된 것은 우리가 문제를 모르거나 외면한다는 것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증상과 원인을 혼동한다. 당장 고통스러운 증상을 문제로 생각하지만, ‘진짜 문제’는 원인이다. 코로나19는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백신은 증상 대응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문제의 답은 아니다. 증상만 처리하려 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양상만 바뀔 뿐 증상은 반복된다. ‘사스’와 ‘메르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다. 백신은 개발하기도 힘들지만 진짜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한 채 코로나 사태만 종식되면 그냥 이전처럼 살면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은 18~30세의 건강한 성인 남녀 36명에게 코로나바이러스를 주입하는 ‘인간 도전 시험’을 진행했다. 최근 공개된 결과에 따르면 참가자의 절반인 18명이 감염되었고, 그중에서 16명이 코막힘이나 콧물, 재채기, 인후통 등 경증에서 중등도 수준의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모두에게 바이러스를 주입했지만 절반만 감염되고 그 정도도 다른 것은 개인의 면역기능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면역력은 선천적 차이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보이지 않을 뿐 우리는 환경과 뗄 수 없이 이어져 있다.

면역 약화 요인은 넓고 깊이 연결

오스트리아의 건강생태학자 클레멘스 아르바이는 면역기능을 약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미세먼지와 자연 파괴를 든다(<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 미세먼지는 우리의 “면역기능을 저하”시키고 “감염에 취약”하게 한다. 특히 미세한 “금속파편”이 포함된 “자동차 브레이크의 마모분진”은 면역세포, 그중에서도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인식하여 제거하는 “대식세포”를 파괴한다. 암모니아는 화학비료와 축산업에서 대량으로 발생하여 공기 중 유해물질의 촉매로 작용하여 미세먼지를 만든다. 우리의 면역체계는 자동차와 화학비료와 축산업과 연결된다.

축산업에 쓸 사료용 콩을 재배하려고 매년 엄청난 규모의 숲을 없앤다. 인간의 경제 활동이 야생동물 서식처를 파괴하면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인 다양한 종의 박쥐는 더 밀집 서식하게 되고 바이러스의 ‘종간 전이’ 위험이 커진다. 전이가 일어나면 바이러스의 독성과 감염성이 증가한다. 서식처 파괴로 먹이가 부족해진 박쥐들은 먹이를 찾아 도시로 접근한다. 공장식 축산과 과도한 육식은 바이러스 감염증과 보이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이어져 있다.

문제들은 넓고 깊게 연결되어 있다. 미세먼지, 자동차, 화학비료, 공장식 축산, 과도한 육식, 숲의 파괴는 서로 연결되어 우리의 면역체계를 약화하고 감염에 취약하게 한다. ‘로마클럽’을 창설한 아우렐리오 페체이는 개별적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들을 ‘복합 문제(problematique)’라고 불렀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오늘날의 문제는 “세계적 위기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시각을 요구”하므로 “인간적 사회적 차원을 분명히 존중하는 통합 생태론”을 제안했다(<찬미받으소서>). 통합적 접근을 요구하는 복합 문제의 뿌리에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자기를 확장하는 자본주의 경제와 생활양식이 있다.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도 우리가 변하지 않고 이전처럼 살면 미세먼지도, 환경 파괴도, 바이러스 감염증도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요행을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탐욕의 문제 해결 없인 재난 계속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 ‘더 멀리’라는 산업자본주의의 주술로 고삐가 풀린 인간의 탐욕은 이윤이 나는 모든 부문에서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 그 주범은 박쥐와 공존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박쥐의 서식처마저 허용하지 않으려는 탐욕의 바이러스다. 멀리 열대우림이 아니라도, 어처구니없이 무너져내린 광주 학동의 철거 건물 현장, 화정동의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 경기도 양주의 채석장에 바이러스가 우글거린다.

기후위기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는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주의 경제와 생활양식의 작품이다.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 진실을 외면하면 바이러스 감염증은 물론이고 더 혹독한 재난이 계속될 것이다. 2년이 넘는 고통의 시간에서도 배우지 못했다면 배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면 앞으로 제대로 배울 가능성도 없다. 바이러스가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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