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회생법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신명기>는 히브리 성경에서 ‘모세오경’이라고도 하는 ‘토라’(율법)의 다섯 번째 책이다. 이 책을 보면, 모세는 광야의 40년 여정을 마치고 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율법을 자세히 일깨워준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몹시 걱정스러웠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풍요가 이스라엘에 위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풍요에 취해 하느님의 가르침을 잊고 멸망의 길로 갈 것이다. 성서학자 월터 브루그만이 말했듯이, “번영은 기억상실”을 가져온다. 그래서 모세는 요르단을 건너려는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율법을 ‘기억하라’고 거듭 말한다. 풍요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그러나 고난의 땅 광야에서 받은 하느님의 계명을 잊어버린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때 최대의 번영을 누린 후 남북으로 갈라져 북쪽은 아시리아, 남쪽은 바빌론에 멸망한다. 솔로몬의 번영에 멸망이 들어 있었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20년 집권을 호언했던 더불어민주당이 10년도 아닌 5년 만에 국민의힘에 정권을 내줬다. 탄핵정국 때, 새누리당이나 자유한국당의 처지를 떠올리면 상상하기 힘든 반전이다. 2017년 봄 장미 대선의 낙승, 3년 후 21대 총선에서 180석의 압승. 민주당은 승리에 한껏 취했고, 바로 그 승리에 패배가 들어 있었다. ‘조국 사태’를 위시해 망조가 든 사건들이 잇달았지만, 민주당은 깨어날 줄 몰랐다. 대통령은 대화하자고 절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재벌을 찾아가 손을 잡았다. 민주당은 자기가 누군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집단이 가는 길을 갔다. 자업자득이다.

민주당이 전념할 건 ‘민주’의 회복

0.73%포인트. 이것은 민주당의 대선 석패가 아니라 차마 저쪽으로는 갈 수 없었던 표들이 만들어낸 간발의 차다. 이 차이로 민주당이 이겼다면? 민주당은 극도의 짜릿함을 맛봤겠지만, 거기엔 재기불능의 치명적인 독이 들었을 게 틀림없다. 그 독은 지금 승리에 취해 안하무인, 불통을 소통이라며 청와대 이전을 밀어붙이는 저쪽에 스며들고 있다.

민주당은 초조하겠지만, 재기하는 데는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수십년간 유배 생활을 하며 자기 행적을 반성했다. 살려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할 것을 해야 한다. 민주당이 할 것은 자기 이름에 쓰여 있다. ‘민주’, 곧 주권자인 ‘민’(데모스)이 ‘힘’(크라토스)을 갖게 하는 것. 헌법은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말하지만, 마음에 들든 말든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주권자를 농락하는 선거제도는 수십년째 바뀔 줄 모른다. 양대 정당은 선거 막판에 ‘사표론’을 들먹이며 사이좋게 단물을 빨았다. 져도 ‘2등’, 언제나 남는 장사다.

선거만 끝나면 너도나도 ‘통합’을 말하는데, 사회를 바라보는 근본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통합하겠다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통합은 획일화일 뿐이다. 우리가 이미 충분히 겪었듯이, ‘모두 한 색깔’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주권자의 다양한 목소리가 다양하게 결집되려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초의원에서 국회의원까지 선거의 비례성을 최대한 높여서 ‘민’의 다양한 뜻이 가능한 한 그대로 의석수에 반영돼야 한다.

민주당이 대선 때 약속한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을 신속하게, 미진한 부분은 보완해서 실천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민’의 다양한 뜻은 점차 다당제 지형을 형성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민주당은 ‘민주’당이 되고 그러면 산다. 여기서 또 머뭇거리면, ‘민주’가 뒷전인 민주당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이번처럼. 지금 민주당이 전념할 일은 정권이 아니라 ‘민주’의 회복이다.

그러면 민주당의 세력은 지금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민’의 다양한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 다당제 지형에서 거대 정당이 축소되는 건 정상이고 바람직하다. ‘민’의 뜻을 둘 중 하나에 욱여넣던 지금까지의 행태야말로 비정상이다. 자기 세력이 줄까 봐 걱정할 것 없다. 저쪽도 준다. 이럴 때 민주당은 ‘더’민주당이 되고 그러면 산다.

‘민’과 함께 가라…죽어야 산다

하나 더, 민주당이 지금 꼭 할 것이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이다. 가장 약한 ‘민’이 힘이 있을 때, 모든 ‘민’이 힘이 있는 법이다. 이 두 가지 법은 사회에서 차별받는 약자, 중대재해에 노출되는 약자에 힘을 주는 법이다. 물론 여전히 반대 세력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실이 커도, ‘민주’에 득이 되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아무리 득이 커도, ‘민주’에 실이 되면 손을 거두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 곧 ‘민’과 함께 가는 정당이 되고 그러면 산다.

죽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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