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을 결집하고 플랜 B를 모색하라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의 외교만사] 국론을 결집하고 플랜 B를 모색하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입장에서는 이제 러시아의 군사행동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억제하던 주요 변수가 사라졌다. 우크라이나에서의 긴장과 군사적 대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미국이 주도하였던 자유주의 패권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는 이제 크게 세 개의 서로 다른 국제질서 패러다임이 상호 충돌하면서 각축하고 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이분법적 진영관에 입각해 있다. 그 전략가들은 더 이상 미국의 단일 패권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트럼프 말기 냉전적 세계관을 계승하면서 민주주의 세력 대 권위주의 세력의 진영 간 경쟁을 추진하였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단결을 강화하여, 중국-러시아-북한-이란-시리아로 이어지는 권위주의의 축에 맞설 것을 설득한다.

중국은 천하 3분론을 주장한다. 미국 중심, 중국 중심, 그리고 서유럽과 같은 중간지대로 분류하고 이 중간지대를 중립화하거나 우호적으로 견인하려 노력한다. 한국은 미국 중심의 세력 중 약한 고리로 인식하는 듯하다. 러시아는 세계를 미국, 중국, 서유럽, 러시아의 4대 세력권으로 나누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가 여전히 국제정치의 중요한 한 축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역대 미국의 전략가들은 러시아(구소련)와 중국이 연합하여 미국에 맞서는 구도를 극력 회피하고자 하였다. 냉전이 격화되던 1970년대 초 미국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통 우방이었던 대만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분리해냈다. 그리고 미·중 준군사동맹 체제를 구축하고 소련에 대적하는 데 성공하였다.

미래 외교안보는 불확실·불안정성

트럼프 행정부는 아마도 집권 초 러시아와의 화친을 통해 중국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싱턴 상층부의 뿌리깊은 반러 정서가 이를 좌절시켰다. 그 기간 중국과 러시아는 오히려 거의 동맹 수준까지 관계를 강화하면서 전방위적으로 대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다만 중·러가 아직 동맹이라 할 수 없는 것은 군사적 지원 의무를 전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러의 상호 협력은 미국이 이들을 억제할 주요한 정책수단을 무기력하게 할 수 있다.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천연 에너지 자원의 국제 거래 가격을 계속 낮추면 된다. 러시아 경제는 이들의 수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구소련은 이러한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중국 경제는 이들 자원의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가격의 하락은 중국의 국가경쟁력을 제고한다. 미국으로서는 진퇴양난이다. 더구나 미국의 현 국력으로는 동서 양 진영 간 동시의 대규모 충돌과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

인도·태평양을 따라 조성되었던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의 접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미·러 간의 전략경쟁으로 전선이 넓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결과는 양안 문제에 대한 시사점이 크다. 미국의 쇠퇴가 기정사실화된다면 중국 역시 행동에 나서도록 고무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한·미동맹으로 인해 대만 문제에 쉽사리 군사적으로 연루된다. 성공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방어한다고 해도 미국은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동시에 러·중과 대치해야 하는 형국이 된다. 세계가 ‘신냉전’의 초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크다. 일부 전략가들은 과거 키신저의 대중국 전략처럼 지정학적 현실주의에 기반하여 우크라이나를 대가로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구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러시아에 반감이 강하고, 공화당은 중국에 더 반감이 강하다. 분열된 국내 정치로는 전략적 선택을 추진하기 어렵다.

역내 새로운 패권 질서의 변화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항상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었다. 요·송의 대립기, 몽골의 융성기, 명나라의 등장, 조선 중기 일본의 중국 질서에 대한 도전, 만주족의 중국 정벌, 서양세력의 동진과 구한말의 역사를 상상해보라. 냉전의 형성기에 유럽에서 점증하는 미국의 압박을 약화시키기 위해 소련 스탈린은 북한의 군사도발을 후원하였다. 미·중은 전쟁에 돌입하였다. 미국의 군사력과 관심은 동북아에 집중되었고, 미·중은 오랜 기간 갈등과 대립의 세월을 보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러한 1950년대의 상황과 유사한 지정학·전략적 구도를 연출하고 있다. 핵미사일 무장을 가속화한 북한은 최근 어느 때보다 무력 도발의 유혹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브레진스키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그랜드 체스보드>에서 언급한 대로 한반도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충돌에 가장 취약한 파쇄지대로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

국론 통일되면 쉽사리 범하지 못해

대선 정국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여야의 대선 후보들은 향후 한국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각 진영의 처방은 이 혼돈의 국제정치 현실과는 괴리가 커 보인다. 제대로 된 대한민국의 외교·안보·경제 해법보다는 국내 정치적 이해를 반영한 땜질식 처방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로운 미래 외교·안보 환경은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한다. 신중하지 못한 선택의 대가는 전례 없이 클 것이다. 국제정치 세력 변경 상황에서 강대국들은 약소국에 엄청난 원심력을 발휘하게 된다. 국내는 친미, 친중, 친일 등 세력으로 갈라지기 너무 쉬운 환경에 노출된다. 전부를 걸어야 하는 대선 국면에서 상호 간에 갈등과 불신은 크고, 승리 외에는 다른 고민을 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대선에서 승리한 세력에 권한다. 차라리 대선 기간 발표한 모든 외교·안보 정책을 재검토의 대상으로 올려놓고 플랜 B를 모색하기를.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기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소련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시나리오별로 쟁론을 벌이게 했던 솔라리움위원회와 같은 프로젝트를 가동할 것을 권한다. 관성에 입각한 소신, 당파성, 무책임 대신 대한민국을 위해 유능한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 국론을 결집시키는 노력을 하길 바란다. 적어도 국론이 통일된 국가는 아무리 작은 국가라도 강대국들이 쉽사리 범하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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