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저성장 인정하고 정책에 집중하길

안호기 논설위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한국의 대통령은 제왕적이라고 불릴 만큼 권한이 막강하다. 그만큼 책임도 크다.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혐오, 분열은 더 심해졌다. 이를 치유하고 통합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은 시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갈수록 깊어지는 경제적 양극화를 개선해야 하고, 불공정과 불평등을 유발하는 제도는 고쳐야 한다.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관계 개선 또한 시급하다.

안호기 논설위원

안호기 논설위원

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앞서 열거한 거창한 과제 말고도 유권자는 다양한 요구를 분출했다. 집값 안정시켜 내집을 마련할 수 있게 하고, 일자리 많이 만들어 부자로 만들어주길 원한다. 대통령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대선 과정에서 이런저런 공약을 잔뜩 내놨으니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경제만 놓고 본다면 차기 대통령 앞에는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2년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경제는 생산과 소비, 고용이 둔화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글로벌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 공포에 떨고 있다. 기저효과라는 게 있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낙관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다.

역대 대통령 중 경제에 소홀한 이는 없었다. 박정희는 수출과 경제발전 토대를 마련했고, 전두환은 마이너스 물가 상승과 최대 호황을 기록했으며, 노태우는 토지공개념 도입 등 경제민주화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김영삼은 금융실명제 실시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김대중은 외환위기 극복 및 정보기술(IT)·바이오 등 신산업 토대 구축, 노무현은 자유무역협정(FTA) 확대와 국토균형발전, 이명박은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과 4대강 사업, 박근혜는 규제완화와 창조경제, 문재인은 소득주도성장과 탄소중립에 힘을 쏟았다. 다만 평가는 다르다.

얼마 전 한 금융그룹 임원과 대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대통령 때 일하기가 제일 편했을까요?”

“글쎄요…. 2016년 말에서 2017년 봄까지가 가장 좋았던 것 같은데요.”

“네?”

“그땐 대통령이 없었거든요.”

웃자고 한 얘기였겠지만 의미하는 바가 없지는 않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간섭은 기업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한 기업의 입장일 뿐이다. 정부는 시장질서를 바로잡고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해야 할 책무가 있다.

경제 성적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지표가 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나 주가지수가 대표적이고, 실업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고통지수도 쓰인다. 성장률은 전두환 재임 때 해마다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가장 높았다. 코스피지수는 노무현 때 173% 올라 상승률 1위였다. 그러나 전두환이나 노무현을 경제 성적이 가장 좋은 대통령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지표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경제정책은 전임자에게 물려받는 게 많고, 새 정책의 효과는 수년이 지난 뒤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는 지표는 대통령을 평가하는 믿을 만한 기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맨큐는 “재임 동안의 경제 실적이 아니라 어떤 정책을 추구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성장률은 계속 떨어질 텐데, 그걸 대통령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한국경제학회가 지난 2월 실시한 ‘경제성장’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5년 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어느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49%가 1%대, 8%가 0%대라고 답했다. 3% 이상은 3%뿐이었다. 이젠 저성장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의 2021년 행복도 조사 결과에서는 150여개국 중 62위였다. 이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꾸려져 오는 5월10일 출범하는 차기 정부의 정책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고성장세 회복이나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따위의 지표는 접어두기 바란다.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인수위는 향후 주요 경제정책의 뼈대를 만드는 골든타임 중 퍼펙트 골드에 해당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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